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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Oct 12. 2021

저울

우리 집에는 오래된 저울이 있었다. 흰 쇠붙이로 된 몸체와 접시에 진보랏빛 실을 꼬아 만든 끈으로 된 손잡이가 있는 작은 저울인데 제 모양과 같은 예쁜 오동나무 케이스에 들어 있었다. 아주 귀하고 작은 것의 중량을 재는 것 같은데 어떤 소용이 있어서 집에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짐작하기로는 할아버지께서 인삼 같은 한약재를 다실 때 혹시 쓰셨나 싶다. 나와 동생이 가끔 할아버지 방에서 꺼내와 아주 조심스레 가지고 놀았다.     

어려서 가장 자주 보았던 저울은 앉은뱅이저울이었다. "고기 한 근 주세요." 말하면 푸줏간 주인은 정확히 그 무게를 단칼에 잘라서 앉은뱅이저울에 척하니 올리고는 단골 정육점은 늘 조금의 살코기를 덤으로 얹어주었는데 그 기막힌 정확함에 늘 경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 시장에서 늘 저울눈을 속이네 어쩌네 말이 많았던 저울이기도 하다. 그 이후 '전자저울'이 나오면서 이런 시비는 일시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중후했던 저울은 쌀집에서 쓰던 판수동 저울이었다. 짚으로 엮은 쌀섬을 불끈 들어서 쇠판 위에 올리고는 고정 추를 이리저리 옮겨서 무게를 맞추던 그 저울. 우리는 쉽게 앉은뱅이저울이라고 불렀다. 평소에는 동네 쌀집에서 키우는 까만 고양이가 그 위에 척 하니 올라앉아서는 노란 눈으로 자꾸 노려봐서 나를 겁나게 했던 저울이다.       


대학에 가서는 정량분석 시간에 작은 접시저울을 수시로 썼다. 분동이 그램 단위로 들어있던 작은 케이스가 함께 있었다. 핀셋으로 분동을 집어 올려 양팔의 균형을 맞춰서 무게를 측정하던 그 저울. 내가 처음 약국을 개업할 때만 해도 이 접시저울은 조제실 필수 구비 품목이었지만 전자저울이 나온 지금 이 저울은 아마도 박물관에나 가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누구나 욕실에 하나씩 지니고 있을 체중계. 욕실의 체중계도 몇 년 걸러 하나씩 새 것으로 바뀌지만 내 체중은 거의 20대와 변하지 않았다. 물론 임신과 출산 이후 몇 년간 출렁이긴 했지만 일단 평소 체중은 5킬로 미만으로 큰 변화는 없다. 단 20대 때는 손가락으로 눌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근육이었지만 지금은 두부살인 데다가 허리는 굵고 배까지 나온 체형이 문제일 뿐이다. 사실 요즘은 체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요즘이야 전자저울이 보편화되어있어 대형마트에서는 밀감이나 감자만 사려고 해도 그램 단위로 계산이 되니 죄다 무게를 달지만 그렇게 쓰는 저울 이외에도 어른이 되어서 늘 쓰는 저울은 따로 있다. 보이지 않게 사람을 재는 저울 말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자로 재고 저울로 달아보는 일을 무의식적으로 쉴 새 없이들 하고 있다. 특징이 있다면 그 자의 눈금이나 저울의 무게 추는 제각각이라는 점. 도저히 KS마크로는 표준화할 수 없는 기준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더 곤란한 것은 계량하는 무게추가 그때그때 다른 것이다. 팔이 안으로만 굽듯이. 때로는 내가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사람의 전혀 다른 계량 기준을 접했을 때 그 낯섦을 소화하고 수용하기가 힘들어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렇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소화해내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이 넓어지기도 하고 깊어지기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깝게 느끼고 서로를 허용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서로의 자나 계측하는 저울눈이 비슷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요즈음은 "세상 그 많은 사람 중에 좋은 사람만 만나기도 시간이 빠듯한데 구태여 싫은 사람과 부대낄 일이 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자나 저울이 아무 의미 없는 친구들, 대충 서로 이심전심할 수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그냥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며 별일 없이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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