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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Oct 21. 2021

알쓸신잡

전에 TV에서 하는 오락 프로그램 중에 옛날이 생각나 그립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우연히 출연진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알쓸신잡"이라는 프로였다. 풀어 말하자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데, 신비할 것까지야 없지만 선별된 출연진의 입담 하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야기에 모처럼 귀가 즐거운 프로그램이었다. 한데 난 이 프로만 보면 예전 그리운 것들이 저절로 떠올라 맘 한 구석이 촉촉해졌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삼사 대가 함께 사는 집이 많았다. 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는 않아도 집안 대소사 때는 으레 전날부터 친척들이 큰집에 모이는 경우가 많았고 당연히 하루 이틀을 자면서 머물렀다. 

우리야 손이 귀한 집인 데다 큰집이 아니라서 우리 집에 큰일로 친척들이 모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집안의 어른이셨던 솜씨 좋은 할머니를 둔 덕에 큰일을 치를 때면 초빙되는 할머니를 따라갈 때가 있었다. 

집안에 혼사라도 치르는 경우 미리 유과나 강정 등을 만드는 잔치 준비 단계에서부터 우리 할머니의 역할이 있었고, 며칠 묵으실 때 맏손녀인 나를 가끔 데려가셨다. 그럴 때면  나는 축제 분위기로 들썩한 친척 집에 모인 언니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평소에 못 보던 온갖 것들을 접해봤다. 울안 우물가의 앵두를 함께 바가지 가득 따기도 하고 동구 밖 밭두렁의 살구를 털기도 했다. 뒷산 참나무에서 둥게(풍뎅이)를 잡고 논에서 미꾸라지 잡이, 연 날리기 겨울에 썰매 타기 팽이치기 등등 재미난 일이 많았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어른들 틈에 끼어 듣는 이야기였다.      


집안에는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그만이지만 집안 어른들 보시기엔 실속이 없어 걱정거리인 멋쟁이 삼촌들이 있었다. 또 역마살이 있어 타지 구경을 많이 하고 입담이 좋은 아재들도 있었다. 물론 집안의 기대를 받는 어른들도 함께 했으니 그 이야기의 범주는 한량없었고 어린 나에게는 알 수 없는 신세계였다. 다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저녁, 이들이 모인 방에서 맛있는 먹거리와 함께 나누는 이야기를 등 너머로 듣는 재미는 어디에도 비길 것이 없었다. 난 못 알아듣는 이야기가 태반이었지만 내 상상의 지평은 무지하게 넓어졌고 내게는 그 방 안의 분위기에 낀 것만도 즐거웠다. 대개 이야기의 끝머리는 듣는 어린 우리를 생각해서 실제 자신들이 보았다거나 친구가 직접 겪었다는 귀신 이야기로 막을 내려 나를 두고두고 무섭게 만들었지만 그 무서움마저도 은근히 달콤한 것이었다.      


그런 재미있고 실감 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른들에 대한 경외감 내지는 존경심이 저절로 생겼다. 어서 자라서 저렇게나 다양하고도 멋진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 기대되어 가슴이 부풀 지경이었다. 나도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싶은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어른들이 그 몇몇 삼촌들, 특히 입담이 좋은 아재들에 대해 마땅찮은 반응을 보이는 것쯤은 괘념할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 집안의 일원임을 자랑스레 받아들이며 익혀갔을 것이다. 어른들 곁에서 얻어들으며 배우는 잡다한 지식들이 책과 더불어 어렸을 적 내 상상력의 원천이자 즐거움이었다. 


물론 세상이 그 사이 많이 바뀌어 지금은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제 아이들은 할머니나 사랑의 어른들로부터 듣던 서사를 동화책이나 TV에서, 유튜브나 만화영화에서 상품을 사듯이 일방적으로 접한다. 어른들 무릎 아래서 접한 이런 집안 문화는 아무리 전수해주고 싶다 해도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TV에서 '알쓸신잡'을 보며 예전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삼촌이나 아저씨들의 무릎 아래서, 종횡무진하던 이야기를 듣던 쏠쏠한 재미가 생각나 이 프로가 낯익게 느껴졌다. 물론 이 프로의 패널들은 나름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라서 예전의 그 아저씨나 삼촌과는 격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시절 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접하던 그 다양하고 진진한 재미는 절대 따라올 수가 없다.      

다들 개성이 다른 출연자들이 쏟아내는 이야기와 재미난 편집 덕에 난 "그때를 아십니까."의 재미를 동시에 누리며 보는 추억의 드라마 같은 프로였다. 물론 이 프로를 보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깨어나는 것까지 그때와 닮았다면 닮았다. 

그런 프로를 접하는 즐거움으로 잘 보지도 않는 비싼 유선방송 시청료를 나는 군말 없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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