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이 들어간다거나 내가 생각했던 어른과 좀 더 비슷해진다는 것을 내 행동이 아니라 식성에서 가끔 느낀다. 전에 할머니나 엄마가 밤을 일일이 속껍질까지 다 까서 준다거나 잔손질이 많이 가는 식재료를 꼼꼼히 다룬다거나 할 때 '어느 세월에 저러고 계실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데 나도 지금 애들 먹으라고 또는 밥에 놓아먹으려고 밤 손질을 일일이 하거나 황태 같은 것을 손질하다가는 문득 예전의 그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 같으면 무슨 맛으로 먹나 싶은 북엇국을 이제는 그 맛을 알아 내가 자주 끓이기도 하고, 구워서 맥주 안주로도 즐겨 먹는다. 좋은 황태를 만나면 넉넉히 사두기도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할머니나 엄마를 닮아가는 것 같다.
전에 시골집에서는 처마 밑에 가짓대와 황태를 두어 마리 반드시 달아두었던 것도 우리 조상의 지혜였다. 약이 귀하고 의료 혜택이라고는 거의 없던 시절 복어 중독이나 기타 해독에는 이들을 사용했으니 가정상비약 정도 되는 것들이었다. 어려서부터 이 북어는 해독에 좋다고 들어왔다. 한데 북엇국의 맛을 안 것은 최근의 일이다. 전에는 별로 가까이하지 않던 이 북어를 최초로 즐겨 썼던 때가 도시 근교 시골에 살 때였다. 벌써 25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는 개를 여러 마리 길렀는데 많을 때는 13마리까지 있었다. 근처에 인가가 없이 풀어놓고 지낼 때라 처음 이사 올 때는 분양받은 진돗개 한 마리였던 것이 스피츠 한 마리를 다시 얻고 또 이 진돗개가 새끼를 낳고 또 그 새끼가 새끼를 낳고 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었다. 나중에는 정말로 어디 오일 장에라도 가서 광주리에 담아 좌판을 벌여야 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새끼가 불어났고 여기저기 좋은 가정을 찾아 분양을 하는 것이 큰 일이었다.
일단 개가 해산을 하면 정말 큰일이었다. 집을 비울 수도 없다. 사람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따듯한 국에 밥을 말거나 죽을 쒀서 먹여야 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나 개나 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서 그리 하게 된다. 게다가 대개 가을에 새끼를 배서 낳는 것은 겨울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따듯한 음식을 줘야 한다. 처음엔 미역국에다가 고기를 넣어 주었는데 시골 어른들 말씀이 "개한테는 북어가 인삼 같은 보약이여. 고깃국보다도 그게 나아. 그것도 몰랐나?" 하니 따를 수밖에. 시골 장에 가서 그분들이 알려준 건어물상에 가면 북어 껍질과 북어 머리를 한 보따리에 얼마 하는 식으로 판다. 그것을 사다가 쌀을 넣고 푹 고아서 먹이는 것이었다.
근교의 시골에 가서 집짓기 전의 첫겨울, 작은 집을 빌려 지냈다. 집안에 걱정거리도 있고 내 맘이 어둡던 그때 하필 노을이(우리 개)가 새끼를 낳을 기미가 보였다. 노을이 집은 너무 작고 추웠다. 집에는 전에 외양간으로 쓰던 곳이 있는데 바닥도 시멘트고 휑하니 썰렁하지만 그래도 그곳이 나을 것 같았다. 그해 겨울 한파 주의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고 단열이 부실한 시골집은 추위를 나기가 쉽지 않았다. 내일모레가 크리스마스인데 하필 그때쯤이 새끼를 낳을 때라니. 남편은 급히 동네 이장 댁에 가서 있는 볏단을 몽땅 사서는 리어카로 실어왔다. 그 외양간 바닥과 벽을 온통 볏단과 볏짚으로 채웠다. 거기에 담요까지 깔아주고 나니 그나마 맘이 좀 놓였다. 그래도 워낙 한파가 몰아치고 폭설까지 겹친 날이라 걱정이 되었는데 크리스마스이브 자정께 새끼를 낳았다. 4마리였다. 그래서 그 애들 이름을 지저스 사형제라고 불렀다. 그 첫 산바라지를 나는 부엌 문턱이 닳도록 했다. 적당히 따듯한 국에 밥을 말아서 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영양가 있을만한 것을 고아 죽을 쒀주기도 했다. 노을이는 그 볏짚을 잘 궁그려서 두툼하고 포근한 둥지를 만들어 제 새끼를 길렀다. 그때의 그 볏짚 내음과 어린 강아지 새끼들 냄새는 지금도 내 아이들의 어렸을 적 기억과 함께 따듯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어미가 얌전해서 잘 먹고 젖도 잘 주고 살갑게 돌본 덕에 지저스 사형제들은 이듬해 따듯한 봄에는 복실 강아지가 되어 아이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따듯하게 토방으로 비쳐 드는 봄 햇살, 통통한 강아지들과 뒤엉켜 노는 아이들, 여기저기 파릇하니 솟던 새싹과 멀리서 들리던 뻐꾸기의 소리는 마치 꿈속의 일이었던 것처럼 아련하게 느껴진다.
이번 연휴 때 모처럼 뒷 베란다를 정리하다 보니 북어 껍질과 뼈, 그리고 머리를 모아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나중에 쓰려고 습관처럼 북어 손질 후에 버리지 않고 두었던 것인가 보다. 언제 다시 개 해부간 할 일이 있을까 싶어 죄다 버렸다. 한번 든 습관은 참 오래도 간다.
지금도 가끔씩 포실 포실하니 구운 북어랑 양념장을 사 와서 맥주 안주로 먹는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남은 북어를 버리기가 아까워 괜히 모아두게 된다. 북엇국 끓이려고 손질 후 남은 것도. 음식 육수로 실컷 쓰고도 남을 양이 부엌에도 있다.
그냥 버리려다가도 '혹시 어디 개가 새끼 난 집 없나?' 습관처럼 살피게 되지만 이내 쓴웃음을 짓고 만다. 지금은 아마도 가축병원과 특수 사료가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