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집에
암 선고를 받고 항암 스케줄을 잡고 하는 동안에도 내내 마음 쓰이는 일이 조카의 결혼식 날짜였다. 동생의 아들, 즉 내 조카의 결혼식인데 우리 집안의 첫 결혼이었다. 가능하다면 조카의 결혼식에 꼭 참석해서 식도 보고 축하해주고 싶었다.
형제라고는 동생과 나 둘 뿐이라서 동생네와는 늘 가까이 살면서 각별하게 지내왔고 조카들 자라는 모습을 쭉 보아왔기 때문에 이모로서 꼭 참석하고 싶었다. 그러나 하필 응급실 입원으로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체력이 고갈되다시피 한 몸으로 서울까지 가서 식을 보고 사람들과 섞이다가 나중에 또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우려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예식장까지 버스로 왕복 8시간을 오갈 자신이 없었다. 모두가 말렸다.
온 식구가 움직여 다들 대절 버스로 이른 아침 출발해서 갔다. 우리 아들도 그곳으로 합류하고.
나 혼자서 집에 누워서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동영상을 보며 마음으로나마 함께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딸이 모든 상황을 꼼꼼하게 찍어 보내주어 마치 나도 참석한 기분이었다. 결혼식을 보며 마음이 울컥하다가는 눈물이 쏟아졌다. 아들을 키워 공부시키고 자립, 결혼까지의 과정을 잘 치러낸 동생도, 조카도 한없이 대견했다.
다음날, 입이 쓴 내가 왠지 조기는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조기 정식을 잘한다는 음식점에 동생과 갔으나 조기도 된장국도 소태 같았다. 그래도 맛있다며 공깃밥 한 그릇을 물 말아 조기랑 다 먹었다. 나를 염려하는 아음을 생각해서라도... 먹어야 산다.
저녁에는 재낭이 유명하다는 녹두 삼계탕을 포장해 왔다. 먹다 보니 내 생각이 났다고. 생전 뭐를 들고 다니지 않는 성격이란 것을 잘 아는데.
병이나 역경은 혼자가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하며 견디고 이겨내는구나 싶었다.
그저 모든 게 고맙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