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XA 매거진 Jun 14. 2019

디지몬 어드벤처 21화 다시, 보기.

 '현실세계로 돌아온 태일!' - 태일과 나리를 위한 변론

현실 세계로 돌아온 태일!


'디지몬 시리즈'는 다마고치로 시작해 게임과 만화,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영역을 넓혀 가며 수많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디지몬 어드벤처>겠지요. 디지몬 시리즈의 첫 TV 애니메이션이기도 하거니와, <파워디지몬(디지몬 어드벤처 02)>, <디지몬 어드벤처 tri.> 등 최근까지도 꾸준히 속편이 제작되고 있으니까요. 어찌나 인기가 많았던지, 당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던 '아구몬' 계열의 디지몬들은 이후 다른 미디어믹스에서도 주인공의 파트너 디지몬으로 톡톡히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가장 인상깊은 회차를 꼽으라면 뭘까요. 아무래도 21화, '현실세계로 돌아온 태일!'이 아닐까요. 메탈그레이몬으로 진화해 에테몬을 쓰러뜨린 후, 태일이와 코로몬은 폭발에 휘말려 현실 세계로 돌아옵니다. 현실 세계에서 나리와 함께 편안한 생활을 누리던 것도 잠시, 태일과 코로몬은 다시 나쁜 디지몬들과 대적하게 되고, 결국 다시 디지몬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21화는 이질적인 작화와 연출로도 유명합니다. 카쿠도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았던 타 회차와 달리,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감독인 호소다 마모루가 감독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보다 가늘고 날카로워진 작화, 실사 영화를 연상시키는 카메라 연출과 극적이고 서정적인 연출법으로 구성된 21화의 장면장면들은 현재까지도 디지몬 팬들에게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당 회차에 관한 호소다 마모루의 과거 인터뷰가 발굴되며 디지몬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21화는 '대낮의 정사를 밖에서 훔쳐보는 듯한 이야기'"라는 발언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뷰 번역 링크 디지몬 어드벤 21화 관련 호소다 인터뷰 번역(동심파괴 발암 충격주의) / 외방커뮤니티)


호소다 마모루 :제21화는 태일의 꿈이었달까(웃음) 이 편은 일종의.. 대낮의 정사를 밖에서 훔쳐보는듯한 이야기입니다. 아름다운 남매애로도 보이고, 남매의 관계를 초월한 무언가 관능적인 이야기로도 보이지요.

인터뷰어 :그 때문인지 나리가 어딘가 요염해보이네요. 요염하다고 해야하나.. 좀 나른한 느낌이..

호소다 마모루 :묘한 색기가 떠돌죠(웃음) 어떤 분이 '뭔가 냄새가 나는 에피소드였습니다'라고 말했어요. 나리가 태일이한테 매달리는 장면, 그건 아무리 봐도 단순히 오빠를 걱정해서 그러는게 아니잖아!라고.. 어른들한텐 보이는거죠. 어린이들 눈엔 '오빠를 생각하는 착한 여동생'으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중략)

호소다 마모루 :그러니까 나리는 단순히 '귀여운 여동생'인게 아니라 오빠에게 위험이 닥쳐오는걸 예감하고 오빠를 되돌려받으려고 하는거에요. 그것도 직접적으로 되돌려받는게 아니라 초등학교 2학년생 나름의 여성적인 부분을 전개해서 빼앗으려고 하는, 예를 들면 나리는 30세가 넘은 본처이고 코로몬은 세상물정을 아직 잘 모르는 20세 남짓의 여자아이(웃음) 자신은 젊지만, 남편이 더 젊은 아이에게 구애받을때 잠자코 지켜보지 않는. '디지털 월드에선 너랑 오빠가 사이 좋을지 몰라도 난 태어날때부터 오빠랑 8년동안 어울린 사이야' '너희들에 관해서도 쭉 알고 있었어. 너희들의 관계 다 꿰뚫어보고 있다고' 같은... 그런 질척질척한 이야기입니다(웃음)


참으로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었습니다. 아동용 애니메이션 감독을 맡은 사람으로서, 차라리 다른 표현을 사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발언입니다. 그러나 발언의 부적절함을 탓하기 앞서, '과연 감독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요컨대, 감독의 말이라고 100% 정답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디지몬의 세계는 훨씬 더 넓고 깊으니까요. 오늘은 <디지몬 어드벤처> 21화, '현실 세계로 돌아온 태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1화의 기본적인 뼈대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호소다 마모루가 주로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호소다 마모루의 초기작들은 모두 '스스로와의 대면을 통한 사춘기적 성장'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썸머워즈>도, "따분하고 무료한 여름이, 아이들만 알아차리게 된 비일상적인 사건(위협)에 의해 파괴될 뻔하다가 아이들의 고군분투 끝에 해결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무언가 조금 변화된 채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어른들은 몰라요!', DOXA 브런치 참고)


이런 구조는 '현실 세계로 돌아온 태일'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태일이는 집으로 돌아와 고요하고 나른한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현실 세계에 나타난 디지몬을 발견합니다. 어른들은 단순히 '기상이변'이라고만 말하지만, 태일이는 그것이 디지몬 때문이라는 점을 꿰뚫고 있습니다. 결국 태일이와 코로몬은 시가지에서 '우가몬'과 전투를 벌이다가, 마침내 우가몬을 디지털 세계로 돌려보냅니다. 다시 말해 21화의 주된 내용 역시 '스스로와의 대면', 정확히는 '디지몬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지몬 세계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맨 처음 디지몬 세계로 빨려들어간 1화를 제외하고, 2화에서 20화에 이르기까지 <디지몬 어드벤처>의 주된 내용은 '나쁜 디지몬과 맞서 싸우기'였습니다. 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파트너 디지몬의 진화입니다. 아구몬이 '그레이몬'으로, '파피몬'이 '가루몬'으로 진화하는 장면이야말로 각 회차의 클라이맥스이자, 우리가 <디지몬 어드벤처>를 보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진화는,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화란 ①거대한 위험이 닥쳤을 때, ②그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진실된 용기, 우정, 사랑, 지식, 순수, 성실, 희망의 미덕을 보여주었을 때야말로 가까스로 가능한 것입니다. 즉 진화는 정신적인 성장입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선택받은 아이들은 매일매일 죽을 위기를 무릅쓸 뿐만 아니라, 태일이의 경우 용기와 만용을 구별하지 못해 그레이몬을 '스컬그레이몬'으로 진화시키기도 했으니까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디지몬 세계에서 아이들은 나쁜 디지몬들과 맞서 싸우며 성장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파트너 디지몬의 진화입니다. 원래대로라면, 현실 세계에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들이니까요. 위기가 닥치면 어른들이 지켜주면 되니까요. 그러나 태일이는 현실 세계에서 어른들이 발견하지 못한 디지몬을 발견합니다. 디지몬에 맞서 싸우는 것은 태일이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태일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곧 디지몬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는 다시 말해 사춘기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1화의 진짜 적


'현실세계로 돌아온 태일'에는 엄밀한 의미에서 악당 디지몬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물론 티라노몬, 두리몬, 우가몬 등의 디지몬이 등장합니다만,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합니다. 살아 있는 디지몬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일이의 환상처럼 보입니다. 그 예로, 대낮에 우가몬과의 처절한 시가전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이에 반응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사적인 면에서도 이상합니다. 21화에 환상처럼 등장한 메라몬, 시드라몬, 티라노몬, 두리몬, 우가몬은 모두 이전에 한 번 물리쳤던 디지몬들입니다. 레오몬이나 우가몬처럼 입체적인 캐릭터(그나마 21화에 등장하는 우가몬은 입체적이지도 않습니다)가 아니고서야, 1회용 악당으로 등장했던 디지몬들이 다시 한 번 등장한다는 건 조금 갸우뚱합니다. 최대한 다양한 디지몬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완구 판매를 위한 TVA의 숙명이니까요.


그렇다면 이런 가정은 어떨까요? '현실 세계로 돌아온 태일'의 진짜 적은 태일이의 동생 '나리'라는 가정 말입니다.(작중 처음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나리는 보스의 자격에 들어맞습니다.)



이 말은 나리가 의도적으로 태일이를 죽이거나 방해하려 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리로 인해 태일이가 스스로의 사춘기적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다는 의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나리는 21화에서 '태일이가 극복해야 하는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 세계로 돌아온 태일이와 코로몬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콜라 마시기'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밥을 먹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먹습니다. 밥을 먹자마자 코로몬은 똥을 쌉니다. 그 뒤 코로몬은 다시 수박을 먹고요. 태일이는 잠에 듭니다. 먹고, 싸고, 다시 먹고, 자기. 이것들은 일차원적 욕구를 해소하는, 아주 유아적인 행동입니다.


유아적인 행동 곁에는 항상 나리가 있습니다. 나리는 태일이의 동생이지만, 전혀 동생답지 않습니다. 밥을 먹겠냐며 권유하는 것도 나리고, 자신의 오므라이스를 양보하는 것도 나리고, 코로몬의 볼일을 돌봐주는 것도 나리고, 수박을 꺼내 주는 것도 나리입니다. 하는 행동만 놓고 본다면 엄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나리는 가족, 특히 엄마를 연상시키는 존재입니다.



나리(엄마)와 함께 있을 때, 태일이는 어른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먹고 싸고 자는 유아적 욕구에만 충실해도 됩니다. "우리 집에 있으면 힘든 싸움 같은 건 안 해도 돼. 밥도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을 수 있고, 푹신한 침대에서 잘 수 있어. 매일 목욕도 할 수 있고. 우리 엄만 잔소리가 심하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를 지켜 주실 거야. 아빠도 그렇고.(태일)"


파트너 디지몬의 진화 상태가 주인공의 정신적인 성장을 반영한다고 했을 때, 디지몬 세계에서 내내 '성장기'였던 아구몬이 '유년기'인 코로몬으로 퇴화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큽니다. 보호자가 없을 때에야말로 아이들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사춘기적 성장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내부의 유아적 성향을 극복하고, 부모와 분리된 스스로의 자아를 형성해가는 것. 그러나 부모의 그늘 아래에 있을 때, 사춘기는 극복되지 못하고 유아퇴행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태일이는 결국 디지몬 세계로 돌아갑니다. 사춘기적 성장은 부모가 대신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를 자각한 순간 코로몬은 다시 아구몬으로 진화하고, 태일이는 다시 '성장기'에 접어듭니다.




태일이와 나리를 위한 변론


호소다 마모루는 이러한 태일이와 나리의 관계를 "아름다운 남매애로도 보이고, 남매의 관계를 초월한 무언가 관능적인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성애적인 관계'라는 뉘앙스가 풍기는 표현이죠. 과연 이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할까요.


나리가 가족, 특히 '엄마'를 상징하는 존재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태일이가 보여 주는 것은 그냥 자식이 아닌, '유아'의 모습이었습니다. 즉 나리와 태일이의 관계는 겉으로 보기엔 '동생-오빠'의 관계지만, 사실상 '엄마-유아'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엄마와 유아의 관계는 아주 각별합니다. 유아에게 엄마는 자신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우애, 효심, 연심, 성애……. 사랑을 설명하는 그 어떤 단어로도 엄마와 유아의 관계를 정의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아주 원초적인 단계의 사랑, 분화되지 않은 에로스(Eros)이기 때문입니다. "남매의 관계를 초월한 무언가 관능적인" 이란 표현은 그렇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원초적 에로스는 성애를 포함하면서도 그보다 더 큰 것입니다.



"나리는 단순히 '귀여운 여동생'인게 아니라 오빠에게 위험이 닥쳐오는걸 예감하고 오빠를 되돌려받으려고 하는거에요."라는 발언도 다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리는 수박을 먹는 코로몬에게 "너도 가지 말고 우리랑 같이 살아. 둘 다 이제 아무데도 가지 마."라고 말합니다. 나리와 태일과 코로몬의 관계가 단순한 성애의 삼각관계라면, 나리는 코로몬에게 "너 혼자만 돌아가"라고 말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나리는 코로몬에게도 돌아가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대화나리로 상징되는 원초적 에로스와, 코로몬으로 상징되는 분화된 자의식 사이의 갈등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들의 여름은 "끈적끈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쉽게 극복될 만한 갈등이 아니니까요.


바로 이 때, 태일이는 혼자 잠들어 있습니다. 잠든 태일이의 모습과 나리-코로몬의 대화 장면이 교차 편집되면서, 둘의 대화는 마치 태일이의 꿈처럼 연출됩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 장면은 태일이의 무의식에서 에로스와 자의식 사이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호소다 마모루의 인터뷰가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표현이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여전히 가능합니다만). 그러나 부족합니다. 나리-태일-코로몬 간의 복잡한 관계를 전부 설명하기에 호소다 마모루의 인터뷰는 빈약합니다. 어쩌면 지면이 너무 적었을지도 모르고요. 어쨌든, 우리는 감독의 말이 곧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게, 디지몬의 세계는 훨씬 넓고 깊다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플레이리스트를 책임질 시티팝 앨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