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면서 듣기 좋은 앨범으로 말이에요. 타케우치 마리야(竹内まりや)의 〈VARIETY〉(1984)입니다.
竹内まりや - 'Plastic Love' in 〈VARIETY〉(1984)
L : 'Plastic Love'는 정말 신기한 곡이에요. 클래식한 것 같으면서도, 힙한 것 같으면서도, 또 엄청 세련됐고.
P : 정말 정말 유명해요. 3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죠.
L :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영미권 웹이나 유튜브 등지에서 재조명받으면서, 많은 리믹스 곡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P : 그게 정말 재밌는 것 같아요. 같은 고전, 같은 명곡이라고 하더라도 원곡 그대로 사랑받는 곡들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면서 사랑받는 곡들이 있잖아요.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L : 제 생각은 이래요. 리믹스는 결국 편곡, 리메이크잖아요. 원작의 느낌에 자신의 해석을 덧칠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그런데 원작이 너무 촘촘하고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으면 웬만한 해석들은 원작의 힘에 잡아먹혀 버리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처럼요. 그런데 'Plastic Love'는 그렇지 않죠. 복잡하지 않은 리프, 간단명료한 비트, 그리고 그것들이 계속 반복되는 구조예요. 훨씬 리믹스하기 쉬운 곡인 거죠.
P : 확실히 그렇네요. 그런데 얘기를 듣고 보니까, 오히려 이런 단순한 구조로도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충분히 이끌어 낸다는 것도 신기하네요. 오히려 더 치밀하고, 어른스럽고 절제된 느낌, '차가운 도시의 여성' 같은.
L : 가사도 그렇잖아요. "나를 결코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 사랑 따위 그냥 게임으로 즐겨도 그것으로 좋아(私のことを決して 本気で愛さないで / 恋なんてただのゲーム 楽しめばそれでいいの)"
P : 멋있어요. 이 앨범이 발매된 건 1984년이란 말이에요. 아무리 버블이다, 호황이다 하더라도 사회는 여전히 지금보다 보수적이었을 시기예요. 35년 전이라구요. 그런 사회에서 '사랑 따위, 그냥 즐겨.'라고 말하는 여성.
L : 환락적인 시대, 화려한 도시에서 느꼈을 법한 헛헛함, 외로움, 공허함. 그런 걸 잘 파고든 가사 같아요.
竹内まりや - '本気でオンリー・ユー(Let's Get Married) ' in 〈VARIETY〉(1984)
P : 'Plastic Love'는 워낙 유명한 곡이었으니, 이젠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수록곡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합시다. '本気でオンリー・ユー'는 도입부부터 재밌어요. 멘델스존의 축혼행진곡을 오르간으로 연주하다가, 드럼 비트를 필두로 한 록 리듬으로 전환되거든요.
L : 맞아요. 엄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에서 말랑말랑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로 바뀌잖아요. 부제목도 보세요. Let's Get Married. "결혼하자!"
P : 'Plastic Love'가 시대를 넘나들 정도로 세련되었다면, 이 곡은 딱 80년대 스타일의 명곡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좋은 노래라는 건 변함없지만요.
L : 동의해요. 거기다 이 노래는 'Plastic Love'의 바로 다음 트랙이거든요. 'Plastic Love'의 쿨하고 깔끔한 구성에서 '本気でオンリー・ユー'의 풍부하고 화려한 구성으로 이어지는 반전과 대비가 재밌는 것 같아요.
P : 가사에서도 반전이 일어나요. "사랑, 그냥 즐겨."라는 가사에서, "아무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어 / 그러니 당장 결혼하자(No one can keep us apart / So, let's get married right away)" 하지만 그런 반전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아주 주도적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사랑이든 결혼이든, 내 마음대로. 자기 주도적으로.
L : 정말 멋있어요. 타케우치 마리야가 당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일본 여성들에게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竹内まりや - 'ふたりはステディ' in 〈VARIETY〉(1984)
P : 결혼하니까 생각났는데, 타케우치 마리야는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郞)와의 결혼으로도 유명하잖아요.
L : 맞아요. 바로 위의 '두 사람은 스테디(ふたりはステディ)'에서 열심히 코러스를 넣어 주고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죠.
P : 타케우치 마리야가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자 가수였다면, 야마시타 타츠로 역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남자 가수였어요. 타케우치 마리야는 데뷔 전부터 야마시타 타츠로의 팬이었고, 데뷔 후에는 같은 레코드 회사의 후배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해요.
L : 일종의 사내연애였군요! 동경하던 가수에서, 존경하는 선배로, 그리고 인생의 반려자로. 로맨틱해요~ 뭔가 굉장히 드라마틱한 관계였을 것도 같고!
P : 생각보다는 평범해요(웃음). 1981년, 타케우치 마리야는 가혹한 스케줄로 인한 목 부상, 그리고 방송인으로서의 활동과 음악가로서의 활동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다가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이때 선배였던 야마시타 타츠로가 이런저런 상담을 해 주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가까워졌고, 결국 1982년 4월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L : 역시 남 연애 얘기가 제일 재밌네요(웃음). 결혼 후에는요?
P : 결혼 이후 타케우치 마리야를 TV 라이브 무대에서 보기는 어려워졌어요. 방송보다 가정을 우선시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렇다고 야마시타 타츠로가 "방송 하지 말고 집안일 해!"라고 말한 건 아니고요. 그냥 본인이 라이브 무대에 서길 싫어했다고 해요. 성향 상 스튜디오에서 조용하고 치밀하게 음악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도 하고요.
L : 장인정신이 있는 예술가군요.
P : 맞아요. 〈VARIETY〉에 수록되어 있는 곡들을 전부 스스로 작사·작곡한 것만 봐도요. 스스로의 힘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일을 멋지게 해내는 사람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