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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XA 매거진 Oct 18. 2019

신분을 뛰어넘은 사랑의 실체

마님, 마님이 쌀밥을 챙겨주실 때부터 알아봤구만유

로미오와 줄리엣은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는 사랑. 역경을 극복해야하는 사랑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에 탄생한 모든 로맨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빚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대중에게 유명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말할 때 항상 언급되는 이야기입니다. 동서고금 불행한 운명에 처한 연인의 이야기는 많은 인기를 끌어왔죠. 불치병, 기억상실, 출생의 비밀 등등.. 이 불행한 운명에는 참 다양한 변형이 있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운명 중에 단연 극복하기 어렵고 매력적인 이야기는 바로 신분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은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

     

자, 이런 이야기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귀족이나 왕족의 신분인 남자가 천한 여자를 사랑하는 이야기와 귀족이나 왕족의 신분인 여자가 천한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죠. 전자와 후자 중에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꼽으면 후자가 될 것입니다. 왜냐구요? 남자 쪽이 귀한 신분이면, 이 연인의 결말은 뻔합니다. 여자가 첩이 되거나 귀한 신분으로 상승하는 거죠. 별로 위기감이 없죠. 그런데 여자가 귀한 신분이라고요? 아주 긴장감이 넘칩니다. 들키면 남자는 죽고 여자는 쫓겨나는 겁니다.


     

살펴볼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돌쇠와 마님’ 이야기입니다.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돌쇠와 마님이 살았다. 돌쇠는 총각이고 마님은 과부였다.’로 시작하는 유명한 이야기죠. 첫 문장부터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이 흥미진진한 상황은 마님이 돌쇠에게만 쌀밥을 챙겨주면서 심화됩니다.

왜 돌쇠에게만 챙겨줬을까? 왜일까?

 건장한 육체가 여러가지 집안일을 하며 꿈틀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님과 그 시선을 은근히 즐기며 마님을 극진히 모시는 돌쇠는 결국 선을 넘습니다. 선을 넘은 그 연인은 알콩달콩 살다가 결국 아이를 갖게 됩니다. 아이를 가진 것을 숨기기는 아무래도 어렵겠죠. 곧 마을에 이상한 소문으로 떠돌게 되고 이 사랑은 곧 들통이 납니다. 이후의 결말은 아주 다양하게 전해졌습니다. 연인이 도망갔다, 둘 다 잡혀 죽었다, 남자만 죽었다, 등등.. 아무래도 민담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버젼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가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무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야기다.

조선시대 성종 때의 일입니다.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의 서녀 ‘이구지’와 돌쇠 ‘천례’는 관청에 불려갑니다. 바로 소문 때문인데요. 무슨 소문이었냐면 돌쇠 천례의 딸 준비가 천례의 도망간 아내가 낳은 딸이 아닌, 이구지 마님이 낳은 딸이라는 소문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서 한양의 궁궐에까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왕은 자신의 이모할머니 쯤 되는 사람의 일이니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신하들의 원성에 조사를 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구지와 천례는 끝까지 부인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구지의 출산을 도운 여인이 사실을 실토하고 맙니다. 준비는 이구지가 천례와 정을 통하여 낳은 아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당시 사회는 경악했습니다. 지금에서야 둘 다 배우자가 없는 남녀였으니 서로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천한 남자와 양반, 그것도 왕실의 여자가 사랑을 하는 것은 당시에는 심각한 죄가 되었습니다.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에 따르면 말 그대로 죽을 죄였지요.


     

이제 이 죄인 두 명에게는 두 가지 갈림길이 남았습니다. 하나는 자백하여 죽은 죄인이 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끝까지 자백하지 않아 고문 받다가 죽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나저러나 죽는 겁니다. 천례는 그래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길을 택합니다. 고문 끝에 죽을 때까지 이구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천례의 이런 노력에도 이구지도 곧 사약을 받아 죽게 됩니다.


     

그냥 야한 이야기로 알고 있던 돌쇠와 마님의 이야기는 이런 안타까운 모습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돌쇠가 먹은 그 쌀밥은 눈물 젖은 쌀밥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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