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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Jan 29. 2018

<제럴드의 게임>

스티븐 킹의 소설을 극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다. 넷플릭스에는 이 작품 말고도 스티븐 킹의 원작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 작품이 많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킹의 팬이 많다는 증거이며 호기심을 유발하는 참신한 소재를 짜치지 않게 끌고 가는 킹만의 능란한 솜씨 덕분에 그의 작품은 영상으로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얘기다.


오랜 결혼 생활로 권태에 빠진 부부가 외딴 교외 별장에 들러 그들만의 음란한 상황극을 즐길 요량으로 SM 도구를 챙겨와 아내의 양손이 침대에 묶인 상황에서 남편이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죽은 뒤 아내의 모노드라마가 펼쳐진다. 사실 예고편에서 저기까지 상황이 제시됐을 때 나는 이 이야기에 뭐가 더 남아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아내 혼자 공포에 떨며 탈출하려 애쓰는 것은 단지 영화의 본 이야기를 촉발시키는 트리거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아내의 과거사가 플래시백으로 펼쳐지는데 그것은 결혼 생활을 내부에서 붕괴시켰던 실질적 원인이며 그들이 문제라고 생각해 해결하려 했던 표면적 갈등은 그저 겉으로 드러난 증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라는 책을 여러 곳에서 추천받고 펼쳐봤을 때 놀라울 만큼 매끈한 번역에 우선 놀랐지만 그것은 번역가의 몫 이전에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가 잘 표현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스티븐 킹은 명료하면서도 위트 넘치는 문체로 시종일관 나를 웃겼는데 그런 까닭은 그가 냉철한 사고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과 일상 생활에 완벽하게 녹여내 만든 설득력으로 그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이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다작 작가를 보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 이해가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연수가 말한 노동자로서의 소설가라는 관점에서 그들은 영감을 기다리는 예술가가 아니라 일단 쓰는 과정에서 영감을 불러오는 오피서 같다. 


본 영화에 대해 조금 더 말하자면 <오큘러스>와 <썸니아>로 알게 된 마이크 플레너스의 작품으로 호러와 스릴러가 섞인 장르의 기본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 중간중간 판타지 요소가 끼어드는데 이것이 이 영화를 빈틈과 지루할 틈을 적절하게 메워줘서 매우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관람했다. 


영화의 백미라고 할 만한 부분은 결말에 나온다. 판타지를 다시 현실의 영역으로 바꿔버리는 선택을 하는데 처음에는 '이거 뭐 허무개그인가' 싶다가도 공히 그런 반응을 예상했을 텐데 천연덕스럽게 마무리 짓는 호기로움에 매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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