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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May 16. 2018

<트립 투 스페인>

영국 아재는 이렇게 웃긴다


<트립 투 스페인>은 <트립 투 잉글랜드>, <트립 투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 속편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인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식도락 여행을 떠나 양껏 수다를 떠는 영화다. 그 외엔 스토리랄 게 별로 없다. 그래서 진입 장벽이 있는 편인데, 영국 아재 둘이 자아도취해 펼치는 만담쇼를 두 시간이나 지켜볼 필요를 못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영화의 웃음 요소는 두 아재가 복사기 수준으로 뽑아내는 성대모사라는 점도 걸린다. 우디 앨런, 데이빗 보위,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로저 무어, 롤링스톤스의 믹 재거, 대부의 말론 브란도, 간달프의 이안 매켈런 등 영미권에서는 친구처럼 익숙한 셀럽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들어보긴 했어도 세세한 말버릇까진 모르는 사람을 흉내 내다 보니 그냥 아재들 재롱잔치쯤으로 보일 법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진입장벽을 뚫어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화 차이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풍부한 문학적 레퍼런스ㅡ일단은 스페인의 문학왕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같은 것 말이다ㅡ가 영화의 풍미를 더해주고 영화가 진행되며 차근차근 제시되는 스티브 쿠건의 내밀한 삶의 고민이 이 여행을 단순한 ‘힐링여행’으로 치부할 수 없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 영화를 ‘윤식당’과 연결 짓는 마케팅 문구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차분한 마음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작은 것에 집중하는 것은 그 자체로 훌륭한 삶의 방식이지만 문학을 비롯한 예술과 대중문화가 가진 힘으로 삶의 고단함을 우회하는 이 영화의 매력을 도매급으로 다운시키는 술수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행이 끝난 후에도 상당 시간 극이 진행되는데 이미 여행이 끝나서인지 지루하게 느껴졌다. 여행의 여운 내지는 여파를 보여주려고 한 것 같은데 스페인처럼 낯설고 멋진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서 대리만족을 기대하며 영화를 보는 나에겐 과잉으로 느껴졌다. 다만 스포일러라서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의 백미인 마지막 장면에서 그간의 지루함을 날려버릴 만큼 기막힌 농담을 완성하는 마침표를 찍어줬기에 만족하며 영화관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에서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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