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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양 May 21. 2018

<케이크메이커>

시큼한 진실을 가리는 달콤한 관능에 관하여

<케이커메이커>는 베를린에서 ‘크레덴츠’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파티셰 토마스(팀 칼코프)가 한 달에 한 번 독일 출장을 올 때마다 들르는 손님 오렌(로이 밀러)과 사랑에 빠지고 그가 돌연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지울 수 없는 상실감에 예루살렘으로 날아가 오렌의 아내 아나트(사라 애들러)가 문을 연 카페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와 다시금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시놉시스만 봤을 때 무척 희한한 얘기다. 토마스가 오렌을 잃은 뒤 그의 흔적을 찾으려 예루살렘을 찾는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있다. 그런데 아나트의 카페에 위장 취업해 오렌의 빈자리를 대신하려 하는 건 당사자 입장에서 패륜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죽은 남편의 불륜 상대가 직원이 되고 친구가 되고 나아가 애인이 된다? 아나트가 후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거북하고 괘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때문에 극은 조용히 진행되지만 관객은 진실이 밝혀질까 조마조마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기묘한 설정을 납득시킨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케이크, 쿠키 등의 맛있는 음식이 있다. 토마스는 솜씨가 아주 좋은 파티셰다. 극 중 아나트가 토마스에게 비밀스런 레시피를 묻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다른 케이크와 별다를 게 없다. 평범한 재료도 토마스의 손을 거치면 특별한 케이크로 탄생한다. 이건 과묵하지만 밝고 사려 깊은 토마스의 캐릭터와 닮아 있다.


토마스와 아나트 사이엔 죽은 남편만 있는 게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끔찍한 대량 학살의 기억 또한 크게 자리한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독일인과 유대인 사이엔 여전히 생생한 현재의 문제다. 이처럼 두 사람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음에도 조금씩 가까워진다. 영화는 그것이 사랑의 힘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인간 개개인이 이기적인 감정으로 만들어낸 시큼한 진실의 모습을 달콤씁쓸한 사랑으로 덮은 채 살아간다.


#관능

케이크가 관능적일 수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느꼈다. 토마스 역을 맡은 배우 팀 칼코프의 묘한 섹시함이 큰 몫을 했지만 반죽을 두들겨 얇게 펴고 아이싱을 짜서 올리는 행위 등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딱 한 번 나오는 러브씬도 케이크를 만드는 도중 조리대 위에서 이뤄진다. 전혀 뜬금없이 느껴지지 않았고 최근 봤던 어떤 러브씬보다 몰입해버렸다.  


이와 관련해 케이트 윈슬렛과 조쉬 브롤린이 주연한 <레이버 데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탈옥수인 조쉬 브롤린이 케이트 윈슬렛이 아들과 단둘이 사는 집에 침입해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한다는 내용의 영화였는데 이 영화에서도 밀가루를 반죽하는 장면에서 진한 관능미를 뿜어냈다. 노출 없이도 야할 수 있는데 이런 건 어린이들한테 보여줘도 되는 건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에서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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