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록 Jun 06. 2023

얕은 수


  삶의 요령이 잠시나마 생긴 것 같았다. 내가 너무 힘이 들 땐 지인들과의 연락을 잠시 쉬기로 했다. 난임과 유산. 근황을 알리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억지로 묶어두었던 인연을 놓아버려도 된다는 것에 홀가분함을 느껴서였을까.


  그럼에도 건강하게 살 궁리를 해야해서 나는 연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았다. 모두 난임병원을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이 바닥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슬프고도 복잡한 이야기를 설명하는 것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 함에 있어 편안했고 좋았다. 난 이 오픈챗방에 1년여 머물렀다. 그 간 임신 성공하여 방을 나가는 사람도 여럿 보았는데 결국 방이 와해되어 남을 사람만 실명으로 남게 됐고 임신하여도 계속 머무르는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로 만남을 쉬이 가질 순 없었지만 동네가 가깝다면 두어번 만나기도 했다.


  내가 특히 힘들었던건 가까운 지인들이 연속하여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기들이 돌을 맞으며 나는 계속 축하만 하고 있어야 하는 세월에, 부러움에, 그만 축하 하고 싶다는 마음이 못됐다 싶어지고 혼자 자책하는 마음이 반복 되니 모든걸 놓고 싶다는 것이었다. sns를 끊고 정말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멀어짐이 가시화 되자 한켠으로 불편했지만 자책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 같아서 편안함이 더 컸다. 그런데 이번에 또 시험관에 실패하고 또 유산을 하자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던 연대하는 그 톡방에서도 나와버렸다. 인연을 우습게 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또 부러워질 것이고 상대적으로 그들도 내가 불편할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도 물과 기름처럼 갈라섰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방을 나오고 두 달여가 지났다. 그 카톡 방에 함께 있었던 동네 언니가 곧 이사가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언니는 6월 쌍둥이 출산 예정이라 아예 친정집 근처로 이사를 결정했다.


  특별한 추억은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 않은 인연은 아니다. 언니도 어떻게 힘들게 아기를 가졌고 축복이 되었는지 옆에서 지켜보았으니 소중한 인연이다. 이미 바빠지기 시작했지만 더 바빠질 것을 예상해 당장 이틀 후 만남을 갖기로 마음 먹었고 급하게 또 당근케이크를 만들어보았다. 그리고 로켓배송으로 주문해놓은 아기 옷을 케이크가 익는 시간동안 빠르게 포장했다.


  6개월 아기 옷을 사고 포장을 한다는 것. 오랜만이었다. 축하를 하는것에 질렸던 나의 한때가 떠올랐다.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해도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이 결국 내가 생각하던 따뜻한 삶인데. 내가 싫어 피하는 것이 요령이라고 생각했던 그 부분에도 사각지대가 있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구나 싶어진다. 당장 마음의 정결을 위해 얕은 수를 쓰려고 했지만 결국엔 돌고 돌아도 살고 싶은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 어떻게든 아름답게 살아보도록 내 마음이 더 부드러워 졌으면 좋겠다.



2021.5.26

매거진의 이전글 넓혀도 좁은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