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하나에 미쳐본 일이 없다. 이토록 싱거운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성격면으로는 개성이 강한 편 같다. 이런 나에게 뭐하나에 미쳐봐라. 하는 건 동기부여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서야 자신이 없는 일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쓰는고 하면 내가 최근 끈질기게 해야만 하는 일이 생겼는데 그게 매니악을 요구하는 일이라 혼란스러워서 그렇다. 내 평생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하여 생각 조차 못하고 살았는데 코 앞에 일이 닥치니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의지나 적극성과 성공적인 창업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하니까 겁이 난다. 좋은 교육의 기회가 생겨 유명 창업가와 시와의 협업으로 진행하는 창업스쿨에 들어가려고 계속 헤딩 중이다.(사실 이미 들어간 상태다) 갈 때마다 상대적으로 백지에 가까운 나의 모습이 딱 혈혈단신이 그 자체다. 커피를 좋아하느냐? 하면 그냥 그렇고, 빵을 좋아하느냐? 하면 싫어하진 않는 정도고, 그럼 너는 뭘 좋아하느냐? 하면 생각나는게 없다. 다만 내가 하려고 하는 구상이 있을 뿐이다.
이 과정을 수료함에 있어 성실함을 요구한다면 자신이 있는데 우선 시작 자체가 영민함으로 다가가는 일이라 잔뜩 주눅이 든다. 사업도 예술에 가까운 타고난 재능같다. 또 자영업이란 하는 모두가 성공의 가도를 달리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시내 자영업자들의 수를 생각한다면 내가 여기 발도 못 붙일 일이라고 이렇게 겁주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좋은 아이디어들로 번뜩여 유명 창업가의 칭찬을 받는 사람들 속에서 노답 타이틀을 머리 위에 얹고 홀로 혼이 나는 기분이란. 그런데 내가 왜 질척거리면서 앉아 있느냐고? 이 교육을 받게 해달라고 줄을 두 번이나 서서 어필을 했느냐고? 탑 창업가에게 조언을 듣는 기회와 이렇게 디테일한 좋은 커리큘럼을 놓칠 수 없어서였고, 다른 어떤 수강생들보다 창업이 확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겐 더이상 미룰 수 없는 큰 일도 함께 병행해야 한다.
나는 우선 승부를 보고 싶은 아이템이 있지만 제대로 말을 해본 적은 없다. 다행히 한 번 나에게 뭘 물어봐줘서 단어로 말을 했는데 한숨을 쉬면서 어찌어찌 해결해보자고 했다. (우선 우리의 바꿀 수 없는 상권이 선생님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멋진 아이디어들로, 선생님에게 말로 혼이 나느라 발언의 기회가 거의 없었지만 사실 말을 할 수록 무덤을 파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왠지 내가 오래가지 않아 나가떨어질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나를 카페 운영을 쉽게 생각하는 건방진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선생님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누구 아래에서 몇년 간 실력을 갈고 닦는 사람도 많은데, 그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은데 나처럼 고상하게 좋은 기회랍시고 수강을 하고 창업을 하려고 하다니! 그렇게 날 바라보기 쉽다. (하지만 난 이 창업스쿨의 조건에 너무 잘 맞는다..)
쉬운 자영업은 없다. 실력도 운도 성실함도 따라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그렇지만 나에게는 원대한 꿈이나(이걸로 왕이 되어야지!하는) 재미가 부재하긴 하다. 그게 아주 큰 문제일거다. 그래도 나는 의지 없는 사람을, 계획 없는 나를 알아서 일으켜 세워달라고 조르는게 아니다.
사업을 꽤 안정적으로 잘하는 친구에게 조언을 구해보려고 연락했다. 그는 '사업'이 아니라 '장사'라는 말을 썼다. 같은 뜻인 듯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여기서 더 나의 혼란이 가중됐다. 운영이라는 단어에서 사업으로, 그리고 장사로 생각을 옮겨보니 마음이 뛰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장사를 생각하는 건지, 무조건 카페를 하려고 하는 건지 말해달라고 했다. 그저 질문만 받았 을 뿐인데 혼쭐이 난 기분이었다. 전자든 후자든 다 잘못된 느낌이었으니까. 장사에 발을 함부로 붙이지 말라고 다들 겁을 주는데 스트레스 받지 말고 지내야 할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도 되는가?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이 스트레스들 속에 꽤 농후한 설렘도 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거다.)
(한숨 돌리고) 나는 어떻게든 열심히 임해서 창업스쿨에서 내준 다음 번 과제를 해 갈 것이다.
한명씩 발표를 할거라고 하는데 그 날 또 얼마나 비판을 받을지 짐작도 안된다.(허허)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데 있어서 이렇게 사람이 밀어내는 경험(?)이 처음이다. 오랜만인건가? 나이가 나름 먹어서 이렇게 웃음거리도 되고 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혼쭐이 나는데 그래도 현장에서는 웃음도 짓고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큰 목소리로 대답도 잘 했는데 기가 빨려서 하루가 힘들었다. 짝궁과 나도 나름대로 아주 중요한 일을 진행 중인 상황에 좋은 기회가 와서 헤딩하는 기분으로 몸을 던지려고 하는거라 보통의 마음은 아니다.
오늘도 하루를 꽉차게 보내고 5시 경 잠시 낮잠을 잤는데 오한이 들어서 한시간 만에 잠에서 깼다. 너무 추운게 이상하더니 귓 속까지 쓰리다. 몸살이 온 것 같다. 대봉 감나무가 잘 자라는 할머니 사시던 집에서 '감 카페'로 승부수를 띄우고 싶은데 앉으나 서나 '감'생각으로 꽉차서 '겁'으로 바뀐건 아니겠지.
2021. 5. 28
(나는 이 당시에 '감'을 활용한 디저트 카페 창업을 준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