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배려주의자
이타적 명분이 남겨질 것들까지 감싸줄 수는 없었다. 이해가 안 됐다. 나는 그들을 위했을 뿐인데… 왜 알아주지 않는 걸까?
매번 신기한 타이밍에 살갑게 무언가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 한 가수의 미니 5집 <Love Poem>은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풀리지 않던 외로운 의문 위로 한순간에 해답을 던졌다. 앨범에 담긴 끄적임과 노래는 타인을 위해 움직여 온 배려가 온전한 배려가 아닐 수 있음을 처음 인지시켜 주었고, 줄 수 있는 배려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까지 제시하면서 본격적인 객관화가 시작되었다.
‘인간의 이타성이란 그것마저도 이기적인 토대 위에 있다.’
이 문장을 발견한 순간에는 가장 크고 오래된 조각을 부정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날 감정은 다름 아닌 나를 깨어나게 해준 소중한 각성이었고, 모든 깨달음의 발단이었다.
알아주길 기대하지만, 하고 싶어서 한 배려에 당연한 감사나 보상은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맞바꾼 이타적인 행동이 이기적이라는 부정적인 토대 위에 올려지는 건 꽤 억울했다. 옛날의 나라면 상대를 위했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네!’라고 답했겠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을 위한 이타적인 행동은 과히 독립적이었던 나의 숨겨진 의존성 표출이었다는 걸. 오래된 불안에서 비롯된 오지랖에 불과했고, 멋대로 판단하여 움직인 생존법이었다. 오지랖과 관심의 여부는 한 끗 차이로 타인에 의해 매겨진다. 사람들은 왜 자기 생각만 할까? 억울했고, 오해했다. 반대로 나를 그렇게 봤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수많은 과거가 떠올랐다. 제주에서 사진을 찍어 준 것도, 자취 대신 삼촌 집에 들어간 것도 마찬가지였다. 삼촌의 오해도 사촌 동생에게 했던 배려에서 온 움직임이었으며, 엇갈린 소원에도 감쪽같이 숨어있었다. 과거를 돌아봤을 때 그동안 해온 이기적인 배려가 점점 우리를 끝으로 밀어냈었던 건 분명했고, 그 까닭에 시간이 흐를수록 밉기는커녕 전하지 못한 미안함만 되새긴다.
특히 의경 시절, 오지랖으로 인한 사건이 많았다. 촌놈이 처음 마주한 개인 사회였기 때문일까. 그곳에서는 산뜻한 의리나 배려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스쳐 가는 인연들의 자기 이득을 위한 행위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었나.
경찰학교에서 나보다 생일 빠른 동기에게 국회경비대에 지원하자고 꼬신 적이 있었다. 나만 떨어졌고, 이 선택은 생일 순 자대배치로 한 명만 갈 수 있는 경찰서 정문 타격대에 나를 배치했다. 타격대 왕고(최고 선임자)는 고작 내 아빠 기수라 그들이 전역할 때까지 나는 8개월 막내를 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데 전입 2주 뒤 선임 한 명이 다른 소대로 날아갔다. 혼란이었다. 나이도 계급도 막내인 내가 본 선임들은 삼행시도 하고 막역해 보였지만, 뒤에서는 서로 가진 약점을 찾기 바빴다. 이랬냐? 저랬냐? 그러다 말실수까지 작당해 모으더니 다른 소대로 선임을 날려버린 것이다. 대신 타격대에는 후임 한 명이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런데 서울청 전산오류로 후임 두 명이 생기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절대 얘네는 선임들 입놀림의 희생양이 되지 않게 해야지!’
선임들을 석 달 정도 지켜본 결과 먼저 후임을 혼내면 굳이 나서서 뭐라 하지 않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그래서 낌새가 보이길래 재빨리 후임을 꾸짖었는데, 곧바로 후임들에게는 어린 꼰대, 선임들에게는 악습 하는 놀림거리가 되었다. 왜 이 작전을 후임들에게 알려줄 생각은 못 했는지. 와중에 후임 한 명은 유도선수, 한 명은 초등학교 선생님, 선임들은 그들이 무섭지도 않냐면서 나무랐다.
자대배치 4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모 검문소 사건으로 경찰청은 타격대와 검문소 통합을 제시했다. 검문소에는 육군 헌병과 의경 4명이 근무하는데, 4개월 주기로 2명씩 교대 근무라는 변화를 준 것이다. 이때 나는 첫 타자로 선정되어 제일 먼저 다녀왔고, 돌아온 경찰서에는 검문소 전역자까지 대체하여 후임 10명이 생겨 있었다. 매달 두세 명씩 후임이 들어온다고 한다. 그럼 나도 이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후임들을 동일시했는지 그들이 나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막내 때 필요했던 것들을 후임들에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나서는 게 나대는 거였다. 그들의 다음 타깃은 일이 서툴러서 온갖 비교질로도 배부른 연오였다. 나도 막내 때는 잘 몰랐었기에 그의 적응을 도우려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처럼 후임들이 꺼내는 이야기를 간간이 듣고, 묻고, 함께 걷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행동들이 이어질수록 나와 생활을 같이 한 적도 없는 타격대원들은 뒤에서 하나둘씩 트집을 잡았다.
“또 이수민 악습 하네.”
“연오가 너 찌르는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당사자는 고맙다는데 왜 나랑 엮이지도 않은 그들이 숨어서 욕하는 건지. 물론 귀 아팠을 연오에게는 미안하지만… 기어코 4개월 뒤 다시 검문소로 돌아갔을 때 일이 터졌다. 어쩌다 일 년 만에 왕고가 된 나는 지쳤고, 있는 규칙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렇게 창피하지만, 분노 조절 못 하는 걸로 유명했던 막내 후임에게 멱살을 잡혔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이었다. 검문소에는 오랜 악 규칙으로 후임이 세탁기 돌리는 것이 있었는데, 본인 선임인 연오가 세탁기 돌리는 모습을 보고 급발진한 것이다. 나도 잘못됨에 화난 적 있으니, 이해는 됐다. 하지만 본인이 돕거나, 새 규칙을 제안하거나, 내가 만만했던 만큼 해결법은 다양했을 텐데.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무작정 오자마자 왕고 멱살을 잡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는 건 너의 영창이 아닐까. 과연 연오를 위한 건 맞았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하필 이럴 때까지 오지랖이 발동했다. 그나마 그에게서 인간적인 면모가 보여서였는지. 대리만족이었는지. 입에 오르내릴 이미지와 자존심 따위는 없었다. 잘못된 규칙을 바꾸지 못한 내 탓도 있었고, 영창 가면 후임은 군 생활도 늘어날 테니까. 당치도 않은 공감을 하면서 전설적인 호구가 되었다.
대부분 관찰자는 각종 우연이 맞닿아 자연히 만들어지지만, 정작 그 사이에서 중요한 관찰자는 은연중 선택한 존재들이다. 왜 그들에게 끌렸던 건지. 대상관계 중에서도 자기애적 대상에 가까운 관계들이었다. 자기애적 대상은 애착 대상처럼 충족해 줄 대상에게 끌려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자기 혹은 자신과 유사한 특성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그들에게 비친 자신에 관한 열망이었으며, 자신과 그들이 분리되지 않은 동일시의 형상이었다. 잘 어울리지 못하는 친구가 함께 어울리도록 나섰던 것, 왠지 모를 걱정에서 비롯된 도움들, 조금이라도 덜 아픈 내일을 맞이하기를 바라며 전하는 이 영화까지. 사랑이라는 독단적인 명분으로부터 불안한 마음 안정을 위한 자기애적 속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르시시즘이나 도덕적인 우월감에 젖은 권위주의자, 악성 댓글 작성자와도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만큼 달콤한 보상이 없으며, 그곳에는 상대에 대한 물음이 빠져있었다. 도움이 될 거라는 말로, 진심이라는 명목으로 누군가의 상처를 합리화하였다. 알아주지 않는 게 서러웠는데, 애초에 자기 마음에서만 파생된 배려는 이기적인 잣대를 향해 심히 기울었다. 억울할 틈도 없게 민망하다. 만일 내 배려가 상대를 위한 게 맞았다면 감히 손가락질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좋은 의도여도 책임은 따른다. 오지랖은 습관을 넘어 성격이 되었다. 쓸모 있었던 순간에 중독되었는지 안 하면 답답하고, 걱정되고, 불안하여 곁을 떠나지 못한다. 강박으로 출발한 이른 약속에 여전히 누군가를 도우며 돌아오는 맑은 웃음을 즐기고는 한다. 그런 이타적인 사유가 손 내밀 명분이 될 수는 있었지만, 그 출발지가 결핍이라 하여 진심이 아니라고 비하할 수는 없겠지만,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았다. 어떤 행동이 선의인가는 나에게나 중요하였으며, 남는 건 상대의 감정이었다. 더구나 이타주의마저 자기 마음 편하기 위한 생존법이었으니. 어떤 이의 미움이 충족에 대한 대가였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수밖에. 그동안 거절이라는 게 참 힘들었는데, 나의 확연한 의사 표현이 상처가 될 수도 있었겠구나. 배려한답시고 했던 행동들이 상대에게는 여지없이 매몰찬 밀어냄으로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지는 않았어도, 이기적이래도 당신들께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는 앨범이 전해준 해답처럼 이타적인 행동이 배려이기 전에 동일시에서 온 간절함이었다는 걸 안다. 그래서 또 누군가에게 이기적인 배려주의자로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그처럼 나도 부탁하고픈 한 명의 관찰자로서 아주 최소한의 것들만 바라기로 했다.
자기 객석에 앉아달라는 것. 그리고 그 영화를 즐겨달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