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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독 Oct 20. 2023

사실 저는 4차원 시간여행자입니다

4차원 4춘기

   도대체 이 영화 속 나의 역할이 뭔지. 순간에 빠질 수 없었던 건 단지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운동을 배웠고, 악기를 다뤘고, 그림을 그렸다. 부러워했고, 꿈을 헤맸고, 서울로 올라왔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쫓기듯 지나온 시간은 존재하고픈 발버둥이었고, 무언가 이룬 듯한 순간에도 오롯이 기뻤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포기라는 단어를 올리기에는 일렀다. 의외로 그건 지금이라서 누릴 수 있는, 나와 어울리는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으니까.      


   라디오 PD가 되겠다면서 방송을 전공했지만, 제작에 관심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역 후에는 마침 카메라도 있고(구매까지 8개월이나 걸렸다), 내일을 결정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영상 제작을 시작했다. 시작했다는 말도 웃기다. 그냥 방송국에서 일하고, 관련 대외활동에 맴돌았을 뿐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생기는 결핍을 막기에 전념했다. 특히 이십 대 초반의 자기소개는 암묵적으로 양식이 있었는데. “안녕하세요. 어디 대학 무슨 과 누구입니다.”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도 그게 두려워서였다. 그러다 의경 선임들에게 무시당하며 대학원을 계획했고, 다들 하길래 취업했다. 아! 타이틀만으로 대우는 완전히 바뀌었다. 뭐지? 나는 그대로인데. 그렇게 쫓기듯 관심 없는 의미를 목표로 잡고서 달렸다. 당연하듯 영상 계열로 취업을 준비했던 나는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코카콜라 끝에 언론사부터 가보기로 했다.

   A사는 영상 과제를 안 내서 2차 탈락. D사는 합격 대신 부장님이 따로 참치를 사주셨다. 남은 선택지는 B사와 C사. 비슷한 중견기업에 어떠한 기준이나 아무 조건도 없이 지원했으니 고를 수가 있나. 그래서 SNS에 투표를 올렸고, 간소한 표 차이로 B사에서 일하게 됐다. 골고루 한다. 나는 이곳에서 처음 유튜브를 접했다. 정규직도 계약직도 아닌 인턴으로 입사했지만, 알려주는 게 하나도 없었다. 기획·취재·촬영·편집과 약간의 디자인까지. 모든 걸 스스로 하다 보니 실력이 늘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퇴사할 때까지 몰랐는데, 다니는 동안 내가 따돌림당했다고 그랬다. 뒷말을 안주 삼아 의도적으로 나만 빼고 커피를 마시러 다녔다나. 심지어 퇴사 후 한참이 지나고서 받은 의문의 연락으로 알게 되었다.

   “너 선배가 성희롱 발언한 거 알지? 와서 증언해 주라.”

   함께 일했던 누나였다. 그러면서 본인도 따돌렸었다며 당당하게 부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원래 나 커피 안 마시는데…. 커다란 의문이 펼쳐졌다. 피해자만 모르는 왕따는 왕따일까? 퇴사할 즘에는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일상을 공유하려 개인 채널도 만들었다. 팀장은 그게 돈이 되냐며 뒤에서 전위를 뽐냈다. 덕분에 공모전 수상도 하고, 협찬도 받고, 각종 여행도 공짜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러다 2019년 생일, 한다고 한 적도 없는 잎새의 일을 얼떨결에 도와주게 되면서, 다음 목적지인 콘텐츠 회사 합격을 무르고, 유튜브도 접었다. 그제야 표정 없이 흐르기만 하던 항해를 멈추었다.    

  

   이유 없는 도전은 무의미해 보였고, 퍼즐 모양조차 알지 못해 빈칸은 그대로 뒀고, 정답은 지날수록 내게서 달아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길 잃은 줄 알았던 끝없는 발걸음들은 점선을 그려 각각의 힌트로 자리하였고, 한순간 새로운 길을 내어주었다. 맑은 표정과 자유로운 포즈로 가득했던 어릴 적 사진과 달리 중학생쯤부터는 아예 사진이 없을 정도로 카메라와 내외하던 내가 3자 시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며 카메라 앞이 설렌다는 걸 알았다. 자그마한 대면에도 눈치를 살피며 부르르 떨던 손은 간데없이 면접관 앞에서 농담 따먹기나 즐기게 됐다. 어찌 나를 쪼끔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수많은 감정 중 최고는 ‘깨달음’ 아닐까. 깨달음은 자아를 가진 인간만 유일하게 인지할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감정과 달리 순간을 넘어 새로운 시야를 트이게 해주는 확실한 영향의 감정이니까. 경험에서 온 깨달음은 외부의 힌트만으로 볼 수 없는 내면의 조각을 풀이해 끄집어냈다. 한동안 찾아낸 깨달음에 설레서 온몸에 색다른 긴장이 올랐다. 정답 없는 세상이 나라는 정답으로 환기되는 기분이었달까. 평범하지 않아서 힘들었는데, 평범하지 않다는 건 특별하다는 거였구나. 평범하기 위해서 태초 가진 것들을 외면하고 있었구나. 왜 우리는 특별함을 품고 평범하기 위한 노력을 할까. 여전히 그것은 특별함인데. 나만 다르다는 감정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소소한 것까지 모두 나라는 맥락에 이유가 존재했다. 그들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앎에도 증명하려 한 것도, 칭찬받고 사람들 앞에 서고 싶었던 모습도, 오지랖을 부리며 많은 말을 하는 이유까지도 오직 내게서 묻어있었다.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게 수많은 환경을 거쳐 만들어진 나였고. 단지 영화관에 앉아있지를 않으니 몰랐을 뿐이다. 긍정적인 모습도 부정적인 모습도 오롯이 나로서 인정하는 순간 조각들은 알아서 모습을 드러내었고, 좀 더 나다운 곳으로 자신을 인도해 주었다. 다음을 내디뎌 봐야만 알 수 있는 현실이었다.      


   사랑스럽다는 언어는 어른스럽다는 반대말로 상쇄된다. 어른이 되고팠던 우리는 현실적이라는 말로 호기심을 억압하고, 희망을 내려두며, 얼마나 많은 사랑스러움을 희생했을까. 한때 우리도 유일함을 자랑으로 여기던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이후 불안정한 허상에 사로잡혀 남은 시간을 결핍으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아이다운 낭만을 누리며 살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대개 현실적이라는 말은 비관적이다. 하지 못할 이유라면서 내세우는 무언가가 과연 현실이 맞을지. 그토록 찾던 현실에서 우리는 무탈했는지. 낙관적인 아이는 이상을 좇는다. 누구나 탐내는 걸 가졌대도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았고, 순간 실패한다 해도 불행이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의미에 속아 걱정으로 평준화된 우리는 손수 실패조차 해보기 힘들었다. 없는 답을 정해놓는 거야말로, 이상으로 가는 길을 막는 거야말로, 현실을 간과한 환상인 거 같은데. 이미 지나간 우주를 보내며 순간마다 하는 자잘한 선택으로 다음 우연을 맞이한다.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 그런 이상을 좇으면서 말이다. 내 마음이 춘기라면 어느 계절이건 상관없이 알맞은 온도에 머무를 수 있었다. 봄이 아니래도 괜찮았다. 참된 안정은 외부가 아닌 나로부터 만들어졌고, 이제는 사랑스럽다는 언어로 어른스럽다는 오류를 상쇄해 버릴 차례다.     

   수없는 결핍을 마주하느라 꽤 오래 걸렸지만, 앞으로도 많은 여정이 남았겠지만, 서툴렀던 만큼 지금부터라도 열렬히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 이제는 자신을 위한 게 무엇인지 안다. 떠밀림이 아닌 여유에서 온 선택은 혹여 틀리더라도 결과에 맞춰 충분히 수정할 수 있었고, 다음 우주는 스스로 정하는 거였다. 결과를 좇는 삶은 성공 아니면 실패로 이분법적이었지만, 현재와 과정에 존재하는 삶은 실패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천천히, 유일한 발걸음에 맞추어 나와의 작은 약속부터 차근히 지켜가면서 신뢰를 쌓아간다. 우선 자기 마음에 드는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인정하고 지지한다. 이게 내가 만난 특별하고도 이상한 나와의 사랑법이었다.


   0차원 점, 1차원 선, 2차원 면, 우리는 3차원인 공간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들에 시간이 더해져서 4차원이 되었다. 우리는 과거를 보고 미래를 추측하는 법을 알았다. 물리적으로 타임머신에 올라타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것만으로 3차원에서 4차원으로 올라선 게 아닐까. 한 차원 위에서는 아래 차원을 다룰 수 있고, 이제 우리가 살아갈 우주 정도는 자신을 위해 다룰 수 있겠다. 우리는 절대 특별하니까. 또 이다음 장면에는 어떤 우연이 등장하여 나를 반길지. 그런 내일들이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4차원의 소우주로 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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