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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독 Oct 20. 2023

‘짱구’처럼만 살겠다는 곧 서른 남자

누구나 인생 영화가 있다

   생각보다 더 사소한 것까지 내가 묻어있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정답만 좇고 살아온 익숙함 때문인지. 정답 없는 혼란에 야위어 간 우리는 타인의 인생 영화를 빌려와 우연한 힌트를 얻는다.     


   ‘우연일까?’ 2014년 7월 9일, 대학로에서 처음 본 연극 제목이다. 헌혈로 영화를 봤던 것처럼 연극을 보기 위해 응모 앱을 설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연극에 당첨됐는데, 그때 든 감정은 처음이라는 설렘도, 배고픔도, 연극에 대한 궁금증도 아니었다. 혼자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당첨 표는 두 장. 관람 일주일 전이었나. 주변 사람 모두에게 연극을 보러 가자고 제안했다. 한 명만 걸려라. 아무나 걸려라. 없었다. 그렇지만 애당초 정해진 해피엔딩이었다. 이걸 왜 이제야 본 건지. 눈앞에서 누군가 허공을 향해 연기하는 것도, 좁은 공간에서 90분가량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도, 조명이 꺼지면 시간이 흐르고, 장소가 바뀌는 것마저 경이롭게 다가왔다. 그 이후 더 많은 연극이 보고 싶어졌다. 그제야 돈을 쓰기… 아니 짠돌이답게 더 많이 응모하였다. ‘당첨’ ‘당첨’ ‘당첨’ 갈까 말까 하다가 내디딘 연극은 이상하게 자꾸만 나를 끌어당겼다.

   어느 날 앱 운영자가 알 수 없는 단톡방을 만들었다.

   ‘뮤지컬 <당신만이> 2019년 9월 26일 8시 선착순 2팀’

   운영자는 느닷없이 VIP를 모아 선착순으로 표를 뿌렸는데, 단지 나는 응모를 많이 해서 VIP인 걸까. 오류인 걸까. 어쨌든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이 이벤트는 나를 위한 게 분명했다. 평소 알림음 대기조인 나는 1초 답장이 일상이니까. 쓸데없이 선착순에 강해서 수시로 연극에 당첨되었다. 조금씩 모으다 보니 표는 80장을 훌쩍 넘어 있었고, 쌓여간 시간은 이전과 다른 우주로 나를 끌어들였다. 나는 연극을 볼 때마다 맨 앞자리에 앉기 위해 표를 빨리 받는다. 그럼 의도치 않게 무대에 불려서 올라갈 때가 있는데, 그때부터 아픈 몸이 병균과 싸우듯 지난 나와의 투쟁이 이어진다. 긴장에 열이 오르면서 ‘앞자리 앉지 말걸.’ ‘도망갈까?’ 온갖 생존법이 스친다. 그런데 주목받는 게 좋았던 건지, 선물이 좋았던 건지, 언제부턴가 관객에게 다발 총을 맞으며 희열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안 불러주면 괜히 서운한 게, 혼자 보는 연극마저 즐거워질 정도였다.     


   가만 보면 그동안 내게 끌렸던 것들은 어지간히 닮아있었다. 그중에서도 지금 떠오르는 건 이 두 가지. 짱구와 과속스캔들. 요즘도 구미에서 짱구를 보면 아빠는 “넌 아직도 짱구 보냐?”라는 말을 일삼으신다. 그게 왜 좋냐고 물어보면 나의 답은 항상 똑같다.

   “그냥. 재밌으니까.”

   왜 짱구에 재미를 느끼는지, ‘그냥’에 담긴 의미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객관화를 나선 후에야 ‘왜 재밌지?’라는 의문을 던져 질문에 질문을 이어갔고 끝끝내 숨겨진 본질을 찾아냈다.

   “짱구는요. 감정표현에 솔직하고요. 자유롭고요. 마을 사람들도 짱구를 다 알아요.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 중심에 서 있는 거 같죠. 그리고 어떤 행동을 취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른 사람들의 반응도 준비되어있어요. 가끔은 기막힌 언어유희도 보여주고요.”     

   2009년 1월, 아마 설쯤이었나. 아빠 주도로 가족 다 같이 시내 영화관에 들른 적이 있었다. 딱히 영화에 관심이 없던 나는 그날로부터 좋아하는 배우를 찾아 개봉 날에 맞춰가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노란색 후줄근한 티셔츠에 뒤로 대충 묶은 머리, 아빠 다리를 한 친근한 모습으로 소파에서 깔깔 웃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사람들은 대개 그 배우님을 귀여운 이미지로 기억하지만, 영화 속 ‘황제인’ 캐릭터는 내 눈에 후광이 좔좔거리는 멋쟁이였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집에 도착하자마자 검색창에 <과속스캔들>을 검색하였고, 배우님을 찾았고, 처음 팬클럽에 가입하였다. 싸이월드 BGM 선물까지 보내면서 메시지도 두 개나 주고받았다. 스무 살 이전 내 생애 최고 자랑거리였달까. 메시지 답장 기능에 감사하다.


   그들에게 끌렸던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 또한 나의 결핍이 충족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과속스캔들>은 곳곳이 취향투성이였다. 라디오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모습. 주변 편견을 넘어 꿈으로 향하는 모습. 능청스럽게 자기 할 말은 하는 모습까지. 군대에서는 드라마 <청춘시대>를 보며 정반대인 듯 닮아있는 ‘송지원’ 캐릭터를 무지하게 좋아하면서, 한동안 ‘송’이 들어간 이름을 좋아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캐릭터가 가진 내면은 전혀 알지 못했는데, 지금이었다면 온통 캐릭터가 가진 묻어남을 지켜보지 않았을까.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멋들어진 겉모습만 동경하였다. 만약 그 시절에 배우라는 꿈을 꿨다면 어땠을까. 덜 아팠을까. 정작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와는 정반대로 삶을 살았다. 고등학생 때도, 스무 살 때도, 전역 이후에도 묻어남은 꾸준하게 그 길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런 꿈을 가지고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친구에게 애먼 오지랖만 부릴 뿐, 내가 갈 수 있는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감정을 자유로이 드러내는 나,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오롯한 내가 되는 법이라는 걸 안다. 언제나 꿈은 명사가 아닌 동사로, 목표는 세상의 기준이 아닌 미래의 나여야 하니까. 무엇이 되고 싶은지보다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지. 누군가는 웃는대도 그게 위 캐릭터들과 배우의 공통점이다.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가장 가까이 존재해야 할 이상이었고, 나로서 감정을 쏟아야만 했다. 이 길이라면 앞으로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 되찾을 수 있겠구나. 연극에 끌렸던 것도 당연한 절차였다. 실시간으로 눈앞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찌 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역시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만나온 세상이 과연 우연일까? 자기만의 영화관 객석으로 초대해 준 각각의 주인공들과 지나온 모든 우연에게 고개를 숙인다.     


   인간은 묻어나고, 또 묻어난다. 호기로 가득한 맑은 눈빛, 어딘가 칙칙한 잿빛. 말투와 걸음걸이, 너무나 사소한 끄적임까지. 각자의 모양으로 눈가와 미간에 주름지듯 관상에서 성격이 묻어나고, 체형에서 태도가 묻어나듯.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이라는 말처럼 나라는 마음에도 생각보다 더 사소한 것까지 내가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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