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랑하는 사람 특
소원이 떠나고서 3년간의 계절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버스 맨 뒷자리 좌측 창가에 앉아 세상 낯선 아이처럼 관찰되는 다채한 표정들을 탐구하고, 정처 없는 산책에 이리저리 눈알도 굴려보고. 어느새 매몰된 자신은 잊히고 마음 가는 선택지들 사이 다가올 우연을 기대하는 익살맞은 표정의 나뿐이다. 어제와 같은 공간. 의식적으로 익숙함에서만 벗어나도 새롭게 느낄 것들투성이였다. 왜 저런 행동을 할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낯익은 물음에도 불안은 호기로 바뀌어 있었고, 그들은 저마다 미묘하게 달랐다. 나이에 따라, 시각에 따라, 장소에 따라. 그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일일이 알 수 없었지만, 흐릿한 조각대로 추측하고 상상하는 재미를 누린다. 대뜸 전화를 걸어 “왜 살아?”라며 묻기도 했다. 돌아온 답들은 드디어 미쳤냐는 애정 어린 말이 대부분이었지만, 지난 계절이 남겨둔 최고의 선물은 방방곡곡에 자리한 관찰자들이 분명했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의 과정은 순탄치만 않았다. 어김없이 찾아온 예상 밖의 나날에 또다시 애착을 잃고, 헤아릴 수 없는 크기의 이별을 하고, 의도치 않은 실수에 심리적 질병들까지도 매서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한층 악덕해진 결핍의 되풀이에도 결과는 달랐다. 나로서 쌓여가는 날들에 다져진 기준은 마침내 단단한 안정이 되어 인위적인 의미들을 걷어냈으며, 머지않아 해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북적한 장소를 좇던 때가 어색하게 사색하기 마땅한 고요를 찾아 정적인 일상을 즐기게 되면서, 지난날들은 조금 아팠고, 순수했고, 혼란스러웠던 시절의 나로 앨범 한편에 정리해 두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인내’다. 모든 단계에서 붙잡고 있어야 할 자질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생존법과 결핍을 가졌든, 그에 따른 선택과 결과가 어땠든, 변변찮은 모습마저 나로서 되찾게 되기까지 견뎌낼 용기. 그게 갖추어질 때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앞선 단계에서는 이해와 인정을 위한 물음을 던졌다면, 다음은 그 물음들을 나누어 유리 공예 하듯 나와 알맞은 모양으로 빚어야 할 차례다. 외로워하면서도 혼자가 편안하고, 미워하면서도 은근하게 사랑하고, 이타적이지만 한없이 이기적이기도 한. 들키고 싶지는 않은데 때로 누군가 알아줬으면 하는 나는 어떠한 의미로 정의 불가능한 모순덩어리였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맞닿은 감정과 환경에 따라 수없이 변해가는 한 인간이었다.
4년 전인가. 어디를 들르나 막내일 수밖에 없었던 대학원 시절. 학생 예비군에서 알게 돼 몇 차례 만난 형께 이런 말씀을 들었다.
“수민아. 너는 되게 평면적인 사람 같아.”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는 숨기는 거 없이 전부를 보여주는 거 같아.”
“네?”
“그래서 좋다고. 부럽기도 하고.”
뭐지.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생각만 많아졌다. 나는 입체적인 게 좋은데 평면적이라니. 보이는 게 다인 사람은 재미없다는 평을 들을 것 같았다. 가만 보면 사람들은 유난히 나를 편하게 대했다. 딱히 듬직한 모습을 비친 적은 없는 거 같은데,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은 내게 먼저 고민 상담을 청했고, 묻지 않아도 자기들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그때는 어떤 것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가가기 쉽고, 편안함과 만만함이 공존했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스스로 깎아내리는 동안 누군가는 나라는 사람이 부럽다며 신기하다고 했다. 그들은 나의 능력과 선택이 생존법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당신이 존재하는 이상적인 우주가 멀리서는 참 평화롭고 고요해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부러워하기 바빴다. 세상이 요구하는 의미가 늘어날수록 유명을 선망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도. 맛집과 유행을 좇고, 흔히 성공이라는 이미지에 근접하는 인물을 당연시하게 치켜세우는 것도 그 괴리가 커짐을 보여주는 나르시시즘적인 투사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순전히 그 행위가 타고나게 좋아서 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으니.
그들이 내게 편히 다가왔던 이유도 세상에는 온갖 가면 쓴 사람이 많았고, 비교적 내가 덜 그래 보였기 때문 아닐까. 우리 부모님의 결핍과 가치관에서 묻어난 조건 없는 지지는 내가 열망하던 인정을 세상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에게서 찾아낼 기회를 선사했다. 덕분에 경쟁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았고, 어우러지는 낭만적인 세상을 꿈꿨으며, 그로부터 파생된 도전들이 지금 이 깨달음의 우주를 만들었다. 그로써 형성된 안정형 애착과 기초 성격. 그와 학습된 의미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다가도 수식어로 짜인 판단이나 경쟁보다 누군가에게 지지를 즐기는 모습이 독보적인 캐릭터가 되었다.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잎새도 그런 이유로 나를 친구로 두었다나.
때로는 세상 물정 모른다며 훈계 대상이 되고, 꾸밈없는 모습으로 터무니없는 구설들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친구에게 피시방이라도 시켜주면 돈으로 관계를 사는 애가 되어있었고, 스치듯 뱉은 언어유희가 한 아이의 별명이 되더니 마치 내가 놀림을 주도한 것처럼 소문나 있었다. 가식 없이 민얼굴로 살아온 대가인가. 그 모든 건 뒤에서 이루어져 알 수 없었으며, 실제로 대면한 순간에는 의외라고 들려오거나 하나하나 해명하러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면서도 원칙과 더불어 등수 나눌 적이 없었던 게 정제되지 않은 나를 보여주면서 꾸준하게 사랑받고 자란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자유가 억압된 사회에서는 보통 지지받은 아이들이 사랑받은 아이로 취급되고는 했으니까. 그러나 나는 아니었다. 알아서 잘한다며 얻어낸 지지는 ‘나한테 기대가 없나?’ ‘원하는 게 없으신가?’라는 해석의 오류를 범했고, 보이는 대로 믿는 아이는 표현에 인색한 부모님을 의심하였다. 도리어 강제로 목표를 부여받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면서, 착한 아이라는 일관된 가면을 써 입체적인 모습을 선망했다. 그 괴리에서 홀로 고립되어 갈수록 괜히 배부른 소리를 하는 아이가 될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끝끝내 입을 다물었다.
단지 그 한 가지 껍질을 두껍게 쌓아온 나라서 평면적으로 보였나 보다. 아니려고 해도 관심과 인정에 동요를 느끼게 된 나는 자신을 제일 이상한 존재로 여기다가도 평범하지 못함을 특별함이라 합리화하여 버텼다. 메신저 목록을 내리는 순간에는 마치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 불안이 눈치를 극대화하면서 잘 기억해 주는 사람으로, 잘 들어주는 사람으로 그들을 끌어들였다. 그러니까 사랑받아본 적 없는 게 아니라, 받은 게 사랑인 줄 몰랐다. 어릴 적에는 분명한 사랑이었음에도 날로 모양이 나와 맞지 않아 혼란이었다. 여전히 누군가는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심함을 뱉을 거고, 누군가는 부러움을 느끼겠지만, 우리는 결핍의 한 면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니 억울함을 소명하기 위해 만회의 연락을 돌리기보다 그들에게 결핍된 것을 내가 가졌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던진다. 쉽사리 던져지는 투사적인 언어 하나하나에 연연하고 상처받기보다 내가 나를 알아주면 됐다.
상황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가 드러나는 건 보호색을 띠는 여느 동물처럼 당연했고, 그걸 받아들인 순간 입체적인 내가 존재했다. 여전히 내치고픈 특성들도 한 조각으로 자리해 있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특징들 때문에 더욱 나를 사랑할지도 모르는데. 결핍에서 생겨난 능력이 그의 결핍을 충족해 주어 가장 사랑하는 특징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나를 사랑할 이유. 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고, 내일 어떤 우연을 마주할지는 모르니까. 서투른 만큼 어느 때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고, 자부심 품을 만큼 충분한 나였다. 그러나 스스로 사랑할 줄 몰라 단점이라 불렀고, 단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를 사랑한 후에는 타인의 사랑을 요망할 일도 없었다. 솟아오른 자신감과 깊어진 자존감 사이 어디를 보았는지. 떨어질까 무서운 자신감인지, 너무 깊어 두려운 자존감인지. 원하는 면을 골라 최선에 주목했을 때는 진심 어린 결핍의 뒷면이 어여뻤고, 후회하는 법은 잊어버렸다. 각자의 이유로 가장 어둡고 길었을 깊은 밤. 막연한 공포에 한사코 감은 눈을 그곳에서 뜨였을 때는 이미 그 자체로 반짝이는 나였다.
때로 완전해 보이는 것을 의심한다. 우리에게 100은 존재하지 않는데, 잘 사랑하게 되기까지의 그들은 어떤 계절을 견뎌온 걸까. 어떠한 밑그림을 숨기고 있을까. 완전함은 순백한 도화지로 0에 수렴하였고, 그 이상을 나아가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아픔을 가장 잘 아는 공감적인 존재였다. 그걸 알게 된 이상 모른척하지 않고, 오는 바람 따라 나만의 파도 춤을 일으키기로 했다. 모든 감상에는 결핍된 내가 숨어있었고, 부러움이란 단지 내면 깊이 존재하는 자신을 끌어내고픈 욕구가 반사된 거였다. 내 것일지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 그런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현재를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실패를 경험할 숱한 연습과 시간이 필요했다. 온갖 물음이 느낌표로 바뀔 때까지.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철부지 어른이 되기까지. 모든 감정이 제자리를 찾아 흐르도록 말이다. 한마디로 이에 동반될 아픔을 견뎌낼 진득한 인내가 불가피했다.
이 영화를 끄적이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바닥에 누워 게슴츠레 중고 거래 앱을 배회하다가 요가 회원권을 끊었다. 이때 배배 꼬인 자세가 이끌은 충동은 객관화와 닮아있었다. 다른 품을 기대하던 나는 처음 스스로 안아주었고, 내 몸을 다루면서 자신과 친하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성을 가진 우리는 고통이 찾는 자리에 호흡을 넘겨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호흡을 보낼 때마다 조금씩 나아졌고, 온몸을 감싼 근육통에 겁나기도 했지만, 날이 거듭될수록 고통은 줄고 유연성은 더해졌다. 견고함 사이 약간의 유연성이면 충분했다. 신체 구조와 상태. 명상하며 드는 생각과 몰입도. 이 좁은 공간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다른데, 그 많은 내면은 얼마나 다를까. 라고 어깨 서기에서 사바 아사나로 무너지는 동안 생각했다. 같은 쌍무지개를 만나도 각자의 소원은 유일했고, 한 사람이 평범해 보인다는 건 아직 그의 계절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다른 게 이상한 거라면, 우리는 당연하게 이상했으며, 닮은 것은 모두의 목적지가 나와의 사랑이라는 바람이었다. 모든 결과는 다음 발을 내디딜 때 내일을 위한 과정으로 치환되었고, 그러니 이대로 자기 곁에 머물러 스스로 더욱 끈질기게 잘 사랑하면 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