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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자기 Oct 03. 2020

소셜 딜레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를 보고

최근 미팅을 하던 중에 자기 pr을 위해 어떤 수단을 갖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sns를 하고 있긴 한데 sns가 하기 싫다고 말했다. 

말이 나온 김에 말하지만 나는 마케팅에 쥐약이다. 기본적으로 어떤 일이든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따라서 마케팅은 마케터에게... 저는 마케터가 아닙니다.) 만화를 그리게 된 이상 자기 pr은 피할 수 없고, 여기서 온갖 딜레마가 나온다.


내가 sns에 작업을 올리거나 나름 pr을 하면 객관적인 지표로 보아 반응이 많지 않다. 정확히는 반응이 적다. 마케팅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것은 마케팅 실패일 것이다. 그러나 난 만화를 일차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해서 그리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걸 그리기 때문에 웬만하면 sns의 좋아요, 리트윗 숫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개되는 이러한 지표에 어떻게 인간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더 심각한 것은 텀블벅이다. 나는 지금까지 텀블벅 펀딩을 두 차례 열었는데, 열 때마다 펀딩 기간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특히 펀딩 시작 직후 ~ 100% 달성 기간까지 스트레스는 최고조다. 펀딩 오픈 직후 처음 며칠은 하루에 텀블벅 사이트에 몇 번 들어가는지 헤아릴 수 없고, 펀딩 달성률 1,2% 증감, 후원자 수 한 두 명 증감에 왔다갔다 하는 나의 마음은... 이런 심정은 일 년에 한 번만 맛보면 된다고 생각해서 내 나름대로 텀블벅 펀딩은 일 년에 한 번만 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종이책도 일 년에 한 번만 낼 거다.


트위터는 예외라고 생각했다. 취향을 기준으로 연결됨을 느낄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했는데(실제로 경험하기도 했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를 보고 트위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연결됨의 장점보다는 악영향이 더 크다는 판단을 내렸다. 따라서 트위터를 비롯한 모든 sns 사용 시간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트위터 피드 업데이트를 확인하는 일이 전혀 즐겁지 않아졌다. 나는 원래 매일 아침 일어나 아침을 먹으며 간밤에 트위터에 업데이트된 피드를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사람이었는데, <소셜 딜레마>를 본 이후에는 스크롤을 넘기면서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지?'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러나 역시 자기 pr을 위해 sns를 안 할 수는 없는 마당이기에 업로드할 때 잠시 들어가고, 하루에 한두 번 정도 피드 확인은 할 것 같다.


내 취향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히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항상 마음 한편에 있다. 워낙 마이너한 취향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이거이거 좋아해, 이런 작업할 거야."라고 말하면 “처음 들어보는데?”라는 반응을 제일 많이 듣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마이너 취향이라는 운명은 이미 어느 정도 받아들였는데, (사실 관점에 따라 "내 취향이 과연 마이너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20세기 클래식 음악에서 쇼스타코비치가 얼마나 중요한데! 러시아 땅덩이가 얼마나 큰데! 러시아 위치가 한국이랑 얼마나 가까운데! 그렇지만 이성을 되찾고 객관적인 한국인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마이너가 맞다.) 트위터는 이런 마이너 취향을 혼자서 떠들기 좋은 sns라 몇 년째 이용하고 있는데, 가끔 오프라인 일상에서 재밌고 좋은 일이 생기면 '트위터에 이렇게 써서 올려야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마주할 때마다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삶인데, 삶이 마치 sns에 자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느낌. 


<소셜 딜레마>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발언은 무엇이 걱정되냐는 질문에 단기적으로는 ‘내전’이라는 답변이었다. 혹자는 이대로 20년이 간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말했다. sns 딜레마의 위기가 이렇게 심각한 답변까지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까지 들을 수 있던 sns의 악영향은 학교폭력, 가정파괴,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 등등이었는데... 이것이 지속되고 사회적으로 단위를 넓히면 내전,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아니, 이미 sns를 전쟁, 학살에 악용하는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었는데, 이미 그러한 사례를 뉴스를 통해 접했는데 왜 <소셜 딜레마>에서 ‘내전’을 걱정한다는 발언을 들었을 때 정도의 체감을 하지 못했던 거지? 내가 인식하는 세계가 어디를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좀 더 정선된 매체를 찾아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연습을 더 많이 하기로 했다. 글 쓰는 것도 그 연장선이기에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정선된 매체가 뭐지? 학술지에 올라온 논문, 신문, 책? 이러한 매체를 읽을 때에도 비판적인 시각을 잃지 말자. 그리고 의심가는 내용이 있다면 다른 글이나 매체에서 재확인하자. 어쨌든 책을 많이 읽자.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읽는 법을 배우도록 하세요. 무거운 책을 읽으세요. 나머지는 삶이 다 알아서 해줄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 1 : sns 사용 시간을 최저로 줄인다.>
<방법>
1. 특별한 이유 없이 sns 하고 싶을 때는 책을 읽는다. (이때 폰은 책상 위에. 난 책 누워서 읽으니까)
2. 책이 읽기 싫으면 딜리헙, 포스타입에서 만화를 본다.
3. 만화도 보기 싫으면 웨이브, 넷플릭스에서 영상매체를 본다.
4. 그것도 싫으면 글을 쓴다.
5. 그것도 싫으면 자...
<결론 2 : sns에 글 올리고 바로 퇴장한다. 좋아요, 리트윗 수는 신경 쓰지 않는다.>
- 이걸 누가 봐? 싶은 마음이 꾸물꾸물 올라오지만, 완성하고, 공개했다는데 의의를 둔다. 그게 어디야!!
<결론 3 : 믿을만한 매체의 글을 읽는다.>
- 그 글을 읽을 때에도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의심가는 내용이 있다면 다른 매체에서 재확인한다. 무엇보다 신뢰할만한 글을 찾고 구별하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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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출처>

- 석영중, <매핑 도스토옙스키>, 열린책들(2019), 72



2020.10.02.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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