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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사냥 놀이? 사냥 노동!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라는 저서에서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는 개 산책을 이렇게 묘사했다.


내 경험에 따르면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첫 산책을 나오는 순간 여러분은 개 키우기가 야외 스포츠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개 주인은 수백 미터 장애물경주, 단거리 질주, 크로스컨트리, 방향 전환과 온갖 점프를 거쳐 마침내 개를 따라잡는 것으로 결승선에 이른다.


  반려견인 민다의 목줄을 쥐고 산책 내내 고군분투했을 카렐이 생생히 그려진다. 호기심도, 체력도 왕성한 반려견과 매일 동네 한 바퀴를 돈다는 것은 매일 둘만의 미니 올림픽을 치르는 것이 아닐까(특이사항은 운동화보다 배변봉투가 더 중요한 준비물이라는 것 정도).

  난 반려견 생강이와 산책하는 전 회사 팀장님을 보면서 위의 묘사가 과장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앞장선 생강이는 가로수, 벤치, 구조물 등 온갖 사물을 킁킁대며 빠르게 걸었으니까. 팀장님은 특이하게 생강이에게 채운 목줄을 손으로 쥐지 않고 배에 묶고 계셨는데 그 이유도 곧 이해가 갔다. 생강이의 힘이 손으로만 지탱하기엔 너무 셌으니까. 생강이의 걸음이 빨라져서 끈이 묶인 배가 앞으로 비죽 내밀어지려는 찰나에, 팀장님은 허리를 뒤로 당기며 말씀하셨다.

  “생강이 덕분에 코어 힘이 늘었어.”

  산책이란 견주에게 걸으면서 하는 복근운동이었다.


  견주의 의무가 산책이라면 집사의 의무로는 사냥 놀이가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냥 노동’. 고양이가 덮치고 싶어서 안달이 나도록 실감 나는 사냥감 연기를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3번, 한 번에 10~15분 이상씩 이 노동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고양이의 사냥 본능을 충족시켜 줄 수 있다.


  난 사냥 노동을 할 때 우선 사냥터를 세팅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리지가 몸을 숨길 수 있는 팰트 재질의 아치형 숨숨터널 2개를 적당한 간격으로 배치하고 거실 리클라이너 소파의 다리를 원위치로 집어넣어 리지가 움직일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 안방 장롱문을 열어 그날의 사냥감을 고른다. 사냥감은 리지가 지겨워하지 않도록 열댓 개를 갖춰두고 매일 다른 것을 쓴다. 종류는 크게 새(색색의 깃털, 꿩 깃털, 타조 깃털 등), 벌레(나비, 호박벌, 큰 파리 등), 뱀(각종 끈류) 3가지다.


  사냥감으로 부드러운 갈색 깃털을 골랐다면 그날의 연기 컨셉은 ‘방심한 참새’ 정도가 적당하다. 중요한 건 연기의 방점을 ‘참새’가 아니라 ‘방심한’에 찍어야 한다는 것. 진짜 참새만큼 날렵하게 움직이면 리지가 못 잡아서 풀이 죽기 때문이다. 전에 깃털을 실제 참새처럼 빠르게 움직이다가 캣타워 꼭대기에 놓았더니 리지가 “와씨 너무하네”라고 말하는 듯이 날 째려보며 울었다. 이후 난 ‘고양이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거실 한복판을 유유히 걷는 참새’ 혹은 ‘쉬려고 앉은 이불 위가 하필 리지 코앞이라 덮치기 좋은 참새’를 연기하게 되었다. 연기의 중요 포인트로 ‘방심을 밥 먹듯이 하는 참새’를 연기해야 한다는 것도 있다. 리지가 놓아주자마자 새 깃털을 또 잡기 쉽게, 잡고 싶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새가 죽다 살았는데 또 방심해?’라는 생각에 연기가 잘 안 될 땐 배우 황정민 님의 조언을 참고하자.

  “캐릭터에 마음을 열어야 돼요. 반감을 가지기 시작하면 절대 그 캐릭터와는 친구가 될 수 없어요.”

  의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활짝 연 후, 난 ‘자신이 불사조임을 알고 계속 방심하는 참새’로 연기 방향을 수정할 수 있었다.

  나와 김박은 리지가 멋져 보일 수 있는 사냥 씬도 연출하려 애쓴다. 리지는 숨숨터널이나 이동장 같은 엄폐물 뒤에 몸을 숨겼다가 가까워진 사냥감을 확 덮치는 것을 좋아한다. 멋진 씬이 안 나올 각일 땐 코앞의 사냥감도 그냥 보고만 있는 똥고집을 부린다. 김박은 그런 리지의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이고 생각하는 액션씬이 안 나오세요?”


  우리는 리지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서로 다른 사냥 노동 스타일도 개발했다. 몸 쓰는 데 자신 있는 난 힘과 스피드가 중요한 육체전을 펼친다. 날렵한 파리에 빙의해 이소룡이 쌍절곤을 휘두르듯 파리 장난감을 휘두르면 리지의 흥분은 최고조에 이른다. 반면 김박은 심리전에 능하다. 캣터널 속으로 파리를 샥 숨기는 감질나는 움직임으로 리지가 안달 나서 옴찔거리게 하는 것이 주특기다.

  그리고 사냥 노동이 온전히 고양이만을 위한 것이 되면 억울한 법. 우리는 노동을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언젠가부터 리드미컬한 노래를 틀고 낚싯대를 흔들기 시작했다. 노동에는 노동요가 약이니까. 흥을 돋우는 데는 아이돌 노래나 댄스곡만 한 게 없다. 얼마 전엔 싸이의 <연예인>을 듣는데 가사가 크게 와닿았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 줄게요

  연기와 노래 코미디까지 다 해줄게


  이 부분이 집사 버전으로 개사되어 이렇게 들렸다.


  그대의 사냥감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 줄게요.

  생쥐와 벌레. 작은 새까지 다 해줄게.


  리지가 평생 우리의 사냥 노동에 즐겁게 엉덩이를 옴찔거려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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