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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취미는 고양이 용품 소비

  ‘취미: 소비’

  같은 팀 선배 J가 자기소개란에 적은 이 문구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취미가 꼭 독서나 음악감상처럼 취향을 갈고닦는 활동이어야 하냐고, 고정관념에 일침을 놓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J가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보거나 갓 도착한 택배 박스를 뜯으며 즐거워하는 표정을 보면 J에게 소비란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는 취미의 사전적 정의에 정확히 부합하고 있었다. J는 등산에 관심이 생기면 일단 등산 커뮤니티에 가입해 다양한 등산용품 브랜드와 상품 정보를 빠르게 섭렵한 후 최적의 제품을 샀고, 텃밭에 관심이 생기면 유튜브로 텃밭 선배님들의 꿀템을 훑고 온라인몰 장바구니에 척척 담았다. J는 말솜씨도 탁월해서 그녀의 소비 후기를 듣고도 해당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손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팀 선배 M은 J가 추천한 마사지샵의 정기 회원권을 끊었고, 나는 J가 추천한 달달한 엿구마를 바로 주문했다.


  또한 나는 J를 통해 내 자기소개란에 딱 맞는 취미도 깨달았다. 바로 ‘고양이 용품 소비’. 사실 이 취미에 입문한 놀라운 계기는 바로 캣페어였다. 캣페어는 고양이 용품 박람회로 한국반려동물신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반려동물 박람회는 가낳지모 캣페어, 궁디팡팡 캣페스타, 마이펫케어, 서울캣쇼, 케이펫페어, 펫쇼(광주/대구/부산/서울/수원 개최)다. 각각 연간 1~8회 꼴로 개최되므로 1년에 총 20여 회 정도의 캣페어가 열린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처음 가본 캣페어는 2022년 1월 21일부터 3일간 열린 <2022 케이캣페어>였다. 삼냥이 집사님의 추천으로 김박과 처음 가보게 된 것인데 참가기업 139개, 운영부스 227개, 전시 규모 약 2,200평으로 캣페어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우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왜 삼냥이 집사님이 캐리어를 끌고 오라고 조언해 주셨는지를 단번에 이해했다. 각종 반려동물 브랜드의 부스 행렬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김박과 난 붐비는 인파 속에서 잠시 아득해졌다. 먼저 정신을 차린 김박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지도에 표시된 구역과 구역을 검지로 연결하며 말했다.

  “먼저 이 구역에서 장난감을 사고, 그다음 이 구역에서 습식캔을 사자. 그러고도 시간이 나면 나머지 구역을 보자.”

  그런데 이 동선 계획은 초장부터 깨졌다. 입구 근처 한 부스 직원분의 열변을 끊지 못해서 첨단 기술이 접목된 고양이 자동 화장실 작동방식을 3분 넘게 서서 들었기 때문이다(집사님, 삶의 질을 바꾸는 제품 하나 보실래요?). 우린 겨우 빠져나와서 맞닥뜨린 부스에선 처음 보는 고양이 간식에 홀렸고(우와! 증기로 찐 생선이래! 종류별로 사볼까?), 바로 뒤 부스에선 몰려있는 사람들 사이를 호기심에 비집고 들어갔다가 어느새 친환경 고양이 모래 택배 주문장을 적게 되었다. 이런 신세계가 있을 줄이야. 부스를 10군데도 안 돌았는데 충격에 어안이 벙벙했다. 스케일에 압도당한 김박이 말했다.

  “와… 나 레오 키울 때랑 차원이 다르네.”

  ‘미야옹철’이라 불리는 김명철 수의사님도 요즘 캣페어에 줄을 서서 입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크게 느낀다셨다. 김명철 수의사님은 우리나라에선 반려묘 문화가 2000년대 중후반 폭발적으로 팽창했는데, 그에 따라 처음엔 플리마켓 형태였던 캣페어가 지금과 같은 대규모로 커졌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셨다. 나도 형형색색의 반려동물 브랜드와 상품을 마주하자 정신이 아득했다.


  조금 후 삼냥이 집사님이 오셨다. 우린 쇼핑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각종 캔, 간식, 고양이 장난감을 캐리어에 차곡차곡 담았다. 고양이가 먹을지 안 먹을지 테스트해 볼 수 있도록 소포장 샘플을 무상 제공하는 브랜드가 많아서 좋았다. 깃털 장난감을 좋아하는 리지를 떠올리며 길이 1m에 육박하는 긴 갈색 꿩 깃털도 샀다. 이걸 등에 멘 채 다니는 김박은 마치 현대로 시간여행을 온 로빈훗 같았다. 박람회장 허공을 꽈배기처럼 가로지르는 꼬리 달린 깃털 장난감을 홀리듯이 마지막으로 구매한 후, 우린 마감 시간인 6시에 퇴장했다. 삼냥이 집사님의 남편 분도 퇴근 후 합류하셔서 집사 넷이서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는 홍콩식 딤섬. 식당에 대기자가 많았는데 친절하신 직원분이 대기하는 동안 우리의 캐리어를 카운터 뒤에 놓아주셨다. 알록달록한 폼폼이, 화려하게 바스락거리는 비닐, 깃털로 이루어진 장난감이 위로 비죽 솟아 나온 캐리어 2개는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사람들이 흘깃흘깃 쳐다봤다. 아마 누군가는 ‘저 캐리어 주인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라 생각했을 거고, 누군가는 ‘와 저거 어디서 팔지? 우리 냥이도 사주고 싶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캣페어를 구경하느라 허기졌던 우리는 딤섬, 양배추찜, 완탕, 양배추를 몇 그릇씩 싹싹 비운 후 집에 가자마자 기절했다. 다음 날도 방전된 체력은 쉬이 추슬러지지 않았다. 캐리어에서 쇼핑한 각종 장난감과 음식을 꺼내 항공샷을 예쁘게 찍고 싶었는데 그럴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캣페어에서 사 온 음식 대부분을 잘 먹어주는 리지를 보니 뿌듯했다.


  리지는 새로운 장난감에도 열광했다. 이후 장난감이 망가지면 그 브랜드의 스마트스토어에서 다른 장난감을 추가로 사곤 했다. 그런데 좋은 고양이 장난감은 대부분 수제라 제작 및 배송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새 장난감이 오기 전에 리지가 헌 장난감에 질려할 땐 집에 있는 살림살이를 이용해 장난감을 뚝딱 만들어주곤 했다. 아래 리지가 꽤 좋아했던 장난감, ‘비닐 셔틀콕’ 만드는 법을 공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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