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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찌 Oct 22. 2023

집사뷰

  팀에 고양이 소식을 간간히 전하던 어느 날, 팀장님이 물으셨다.

  “실제로 고양이 키워보니까 어때?”

  난 떠오른 느낌을 곱씹으며 이렇게 답했다.

  “집 어디서나 ‘좋아요 1’을 받고 있는 느낌이에요.”

  여름휴가 때 ‘오션뷰’ 숙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처럼 리지도 매일 집요하게 ‘집사뷰’를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리지는 우리가 가장 잘 보이면서 자기에게도 편한 자리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예로 우리가 저녁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으면 리지는 맞은편 거실 캣타워 꼭대기의 투명 반구에 앉아 우리를 내려다본다. 우리가 TV를 보려고 소파에 앉으면 리지는 대각선 방향의 화장실 발 매트 위에 앉아 우릴 쳐다본다. 우리가 일을 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리지는 책상 뒤쪽 방석 위에서 엎드려 우리를 바라본다. 집안 곳곳에 우리를 지켜보기 좋은 ‘핫스팟’을 점찍어 둔 것 같다.

  그래서 볼일을 보다가 옆통수가 따가워 고개를 돌려보면 어김없이 우리를 빤히 보는 리지와 눈이 마주친다. 리지의 두 눈은 마치 잠복근무하는 형사처럼 우리를 집요하게 따라붙는다. 그런데 리지는 지구력 좋은 형사는 아니다. 감시한 지 몇 분 안 지나 곯아떨어지니까. 지구 끝까지 따라붙을 기세였던 리지가 꾸벅꾸벅 조는 걸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나저나 리지는 ‘집사뷰’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걸까. 김박에게 의아함을 품고 물었다.

  “리지는 우릴 맨날 보잖아. 뭐가 새롭다고 저렇게 계속 쫓아다니면서 우릴 보는 걸까?

  김박이 답했다.

  “그래도 리지도 집에선 우리가 제일 신기하지 않을까? 우리한테 리지가 제일 신기하듯이.”

  생각해 보니 나도 맨날 보는 리지지만 리지가 눈앞에 안 보이면 “리지야”라고 부르면서 온 방을 돌아다닌다. 리지가 냥냥거리며 놀아달라고 조르거나, 챱챱 밥을 먹거나, 눈을 꿈벅이다 잠들거나, 스크래처를 벅벅 긁는 모습은 매일 조금씩 다르게 귀여워서 자꾸만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커다란 밤빵 같은 털 뭉치는 어떻게 이렇게 매 순간 다르게 사랑스러운지.


  사실 집사를 졸졸 따라다니며 쳐다보는 건 고양이에게 흔한 일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알려져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밥을 달라거나, 놀아 달라거나, 화장실을 치워달라는 등의 요구사항이 있어서다. 리지는 특히 저녁밥 요구는 확실하다. 우리가 저녁 식사를 마칠 때쯤, 리지는 식탁 옆에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우두커니 앉아서 우릴 쳐다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8시 10분에서 8시 30분 사이. 리지의 저녁 식사 시간이다. 밥때를 매번 제때 알리는 시위에 김박은 자주 감탄한다.

  “리지 시계 볼 줄 아는 거 같아.”

  두 번째 이유는 궁금해서다. 우리가 캣타워를 산 날, 부품을 박스에서 하나씩 꺼내서 방바닥에 늘어놓자 리지는 “이게 다 뭐래애?” 하는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 채 우리와 부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곤 한 1m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더니 삼줄이 감긴 기둥, 나무 판, 카펫, 나무 숨숨집을 차례로 조립하는 우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마치 아파트 건설 현장 감독 같았다. 자기 물건인 걸 직감해서인지 리지가 더 엄격한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무거운 나무판을 쌓고 나사를 조이는 동안 리지의 매서운 눈을 보면 허투루 일할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이유는 그냥 보고 싶어서다. 어느 날 소파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맞은편 리빙박스 위에서 햇볕을 쬐던 리지가 갑자기 소파로 폴짝 올라왔다. 그리곤 리지는 내 옆에서 두 뼘 정도 떨어진 곳에 엎드려 날 빤히 보았다.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자 리지는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이 평화로웠다. 리지가 손을 물려고 해서 평화는 5초 만에 깨졌지만. 아무튼 이렇게 나의 모든 움직임에 귀를 쫑긋 세우고 다가와주는 리지가 때론 든든하다. 이러한 지켜봄은 고양이에게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이 아닐까.


  리지는 때론 지켜보는 것을 넘어 나랑 행동도 똑같이 한다. 어느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에 갔는데 리지가 화장실로 뒤따라 들어온 적이 있다. 리지는 바로 앞에 있는 고양이용 화장실에 쭈그려 앉았다. 나와 똑같이 졸린 눈을 끔뻑거리면서. 곧 나의 ‘쪼로록’과 리지의 ‘쪼로록’이 하모니를 이루었다(‘불알친구’만 들어봤지 이런 ‘방광 친구’도 있을 줄이야...). 초등학생 때 쉬는 시간에 같이 화장실에 갔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묘하게 든든했다.

  함께 침대로 돌아온 리지와 푹 자다가 그날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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