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다른 삶을 함께 걷는 법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

by 유리의아빠

요즘은 사람을 알아가는 방식이 너무 빨라졌다.
몇 마디 나누기 전부터 성격은 이미 분류되고, 취향은 유형화된다.
MBTI라는 네 글자에 기대어 누군가는 “그럴 줄 알았어” 하고, 또 누군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다.
세상이 바쁘다 보니, 사람을 천천히 알아갈 시간은 사치가 돼버린 것만 같다.

나와 아내는 MBTI로 보면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나는 ENTP, 그녀는 ISFJ. 네 개의 선호 지표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
물론 성격 유형이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진 않는다. 사람은 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많이 다르다. 처음엔 그 차이가 다툼의 씨앗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 그 다름이야말로 서로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종종 갑작스럽다.
“이번 주말에 여행 갈까?” “이 아이디어로 창업하면 어떨까?”
머릿속이 떠다니는 생각으로 가득하고, 말도 많고, 시도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조용히 내 말 끝을 들은 뒤, 꼭 필요한 한마디를 건넨다.
“계획부터 좀 세워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말에 숨을 고르게 된다.
나는 가속페달이라면, 그녀는 브레이크다.
그녀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고, 감정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처음엔 너무 느리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높이 날 수 있는 건, 그녀가 단단히 지면을 붙들어주기 때문이다.

퇴근하면, 그녀는 늘 따뜻한 밥과 함께 하루를 풀어놓는다.
아이들 이야기, 이웃의 소식, 동네 커뮤니티의 크고 작은 사건들.
그럴 때면 나는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누가 잘못했는가’를 정리하고 있다.
F형의 아내는 공감을 기대하고, T형의 나는 사실을 근거로 판단하려 한다.
결국 우리는 어딘가 2절쯤에서 말을 멈춘다.
그녀는 “다신 얘기 안 할래” 하고, 나는 “그럼 왜 물었어?”라며 억울해한다.

그런 아내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말했다.
“친한 동생이 있는데, 이번엔 감정 말고 논리로 얘기해봐도 될까?”
평소 같으면, 늘 공감만을 전하던 그녀였기에 더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논리로 조언해도 되는데… T발C 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우리는 다르다.
속도도, 방향도, 말하는 방식도.
그렇지만 다르기에 부딪히며 배우고, 어긋나듯 닿아가며 걷는다.

우리는 오늘도
속도가 다른 삶을 살며
함께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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