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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May 23. 2017

내가 지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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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 시, 잠자리를 준비하는 내게 세 살 둘째가 뛰어온다. 《뱀이 좋아》라는 책을 내밀며 “아빠, 이거 읽어 줘.” 한다. 나는 이게 마지막이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얼렁뚱땅 읽는다.


책을 덮자 “나도 뱀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둘째. 내가 “뱀이 우리를 앙~물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자 둘째가 손을 머리에 올려 하트를 만든다. ‘사랑해~’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안 물어!“

 

물론 육아가 이렇게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월요일 아침, 아이 둘을 차례로 깨워 씻기고 먹이고 입히느라 같은 말을 두세 번씩 하며 다그치는 내 목소리를 들을 땐 털썩 주저앉고 싶다.  

 

애써 합의해 눈을 덮은 머리칼을 손질하고 목욕까지 했건만, 퇴근한 엄마 손을 잡아 자기 이마에 대곤 도로 머리칼을 붙여 달라며 울먹이는 둘째를 보면 정신이 무너질 것 같다.  

 

홀로 육아하던 아내의 고단함과, 일찍부터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의 외로움을 안 건 사 년 전이다. 다섯 살인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옮기고 많이 힘들어했다. 데리러 가면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본체만체했고, 손도 잡지 않고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그 모습에 첫 육아 휴직을 했다. 지금은 두 번째 휴직 중이다.

 

매일 반복되는 아이들 생활은 물론이고 시기별로 챙겨야 하는 예방 접종, 성격 다른 두 아이 사이에서 아빠 노릇 하기란 여전히 낯설고 힘겹다. 게다가 줄어드는 통장 잔고와 복직에 대한 질문을 마주할 때면 ‘과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두려움이 찾아온다. 남들처럼 부지런히 출근해 아이들 학원비를 마련하고 부부의 노후 자금도 준비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다 아이스크림이 흐르는 내 손을 보고 휴지 대신 자기 옷을 내밀며 “아빠, 여기에 닦아.”하는 둘째와, 베개를 들고 곁으로 와서는 짧은 팔로 내 목을 꼭 감싸며 “잘 자. 내가 지켜 줄게.” 하는 첫째를 보며 육아 휴직을 다시 생각한다. “아이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쌓는 이만한 노후 대책이 또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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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지난 1월부터 월간지 《좋은생각》에 아빠 육아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켜 줄게>는 지난 1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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