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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May 29. 2017

엄마, 언제 가세요?

햇빛이 창으로 들기도 전인데 두 딸은 벌써 부스럭거린다. 어제는 토요일이라며 늦게까지 놀더니만, 오늘은 일요일이라며 일찍 일어났다. 평일엔 이불속에 꽁꽁 숨던 녀석들이 주말엔 힘이 넘친다. 하지만 내게 오늘은 주말이 아니라 아내가 동창을 만나는 날이다. 즉, 아내 없이 아이들과 온종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멍하니 식탁에 앉은 나는 마음만 분주하다. 어제 미리 주말 청소도 끝냈고 마트에서 장도 보았는데 말이다. 해맑게 뛰노는 두 딸 덕분이다.  

 

아내 몰래 녀석들을 살짝 부른다. “엄마가 외출하잖아. 우리끼리 파티할까?” 하자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낸다. 만화 영화를 맘껏 보고 싶다는 신호다. 보드 게임도 하기로 했다. 영화 볼 때 먹을 솜사탕과 팝콘, 과자, 음료도 준비한다. 그러고 나니 아이들이 외출 준비로 분주한 엄마 옆을 서성인다. ‘또 엄마에게 매달리는 건가?’ 하는 찰나, 첫째가 묻는다. “엄마, 언제 가세요?” 둘째도 따라 묻는다. “엄마, 언제 가세요?”  

 

사실 내가 휴직을 하고 아이들과 동고동락한다지만, ‘엄마’라는 존재를 넘기엔 역부족이다. 같이 먹고 호흡했던 임신 10개월을 울고 웃는 육아휴직 10개월로 따라잡기엔 한계가 있다.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현관문을 여는 엄마의 소리에 모든 것을 멈추고 뛰어가서 안긴다. 한 번은 장난감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엄마에게 주면서 “이거 먹어. 비밀이야. 아빠한테 뺏기면 안 돼.”하고 크게 말해 머쓱했던 적도 있다. 이런 아이들이 ‘엄마, 어디 가?’, ‘엄마, 가지 마?’가 아니라 왜 빨리 나가지 않느냐고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여전히 우리를 걱정했지만, 나는 우쭐해져 당당하게 배웅한다. 우리 셋은 만화 영화 한 편을 보고, 보드게임 세 가지를 사이좋게 해냈다. 둘째는 낮잠까지 거르며 엄마 없는 시간을 즐긴다. 
 

땅거미가 질 무렵 나는 지치기 시작한다. 미리 예상하고 단단히 마음먹었으나 어쩔 수 없다. 기분 좋은 첫째에게 신난 둘째를 맡기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아내에게 보내는 문자를 썼다 지우고, 또 쓰고 다시 지운다. “언제 오나요?”하고.  


우연한 기회에 지난 1월부터 월간지 <좋은생각>에 아빠 육아에 관한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엄마, 언제 가세요?>는 지난 3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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