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장 신경 써야 할 점이라면 뭐가 있을까.
영유아 시기의 자녀라면 잘 먹이고 깨끗이 입히며 푹 잠들게 하는 것이 아닐까. 또 아이가 기고, 걷고, 뛰어다니기 시작하면 부딪히거나 넘어져 입는 상처를 예방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홀로 숟가락질을 하고 옷을 갈아입을 즈음이면 세상의 거친 풍파에 대비해 요청하지도 않은 학습권을 챙겨줘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녀가 태어나 자라고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 앞에 선다. 그 결과가 서로에게 만족을 가져오면 좋겠지만, 현실에선 싸늘하게 등을 돌리는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물론 결과에 실망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대개는 논의 과정에서 얼굴은 붉어지고 목소리는 날카로워진다.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소통이 이루어졌더라면 결과에 대한 수용성도 높았을 텐데.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과정에서 자녀와 부모의 원활한 소통이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
며칠 전 첫째 은이와 아내가 거실에서 대화하고 있었다.
난장에 가까운 거실을 본 아내가 먼저 "여긴 언제 청소할 거야?" 하고 묻자,
"왜 나만 청소해야 해?"라고 은이가 대꾸했다.
목소리가 두 단계 이상 높아진 아내는 "너도 놀았잖아. 그리고 여섯 살이나 차이 나는 동생과 뭐든 똑같이 해야겠어?"라고 말했고,
침묵이 흘렀다.
입이 삐죽 나온 은이를 본 나는 '이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내심 아빠의 따뜻한 위로를 바랐을 텐데, 눈치 없는 나는 "은이야~ 너에게 매주 용돈을 주잖아. 빈이는 가끔 뽑기를 할 때 오백 원을 주고. 그럼 매주 너랑 똑같이 용돈을 줘야 할까?"라며 잔소리를 이어갔다.
다시 침묵이 흐르고, 10분이 지났을까. 은이는 조용히 모닝롤을 가져와 딸기잼을 퍼올려 쌓았다. 은이의 건강이 걱정된 나는 입 밖으로 "왜 그렇게 잼을 많이 먹어?"라고 했다.(말하고 나니 치사하게 먹는 걸로 잔소리한 게 민망하다.)
이러고 나면 은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는다. 먹을 것으로 유혹해 화를 푸는 시기도 지났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이 또한 반복되면 점점 아빠로서의 권위 상실은 물론 대화의 상대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잔소리의 폐해가 이 정도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
아내가 외출한 어느 날, 은이와 빈이 그리고 나는 집에서 크기가 다른 세 마리 곰돌이가 되어 뒹굴며 놀고먹었다. 그러다 식탁 위 덩그러니 빈 봉지가 놓여 있어 "이건 뭐지?" 하고 물으니, "모닝빵이 있었는데, 내가 먹었어"라고 빈이가 말했다. 잼을 꺼내 준 기억이 없어, "냉장고에 있는 잼은 안 발라 먹었어?"라고 물으니, "응! 아빠가 언니한테 먹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답했다.
아뿔싸! 내가 은이에게 한 말과 행동은 오롯이 은이에게만 전달된 것은 아니었다. 이를 보고 있던 빈이에게도 전달되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잔소리의 나비효과'를 경험하니, 나의 지난 행동이 다시 보였다. 분명 자녀의 판단과 행동에 도움을 주고자 상황이나 사유를 설명한 것인데, 마치 답을 정해놓고 유도하는 것처럼 말하다가 자녀가 나의 예상과 다른 반응을 나타내면 버럭 하며 잔소리로 수렴했던 것이다.
이런 내게 딱 맞는 묘안이 있을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인터넷에서 송지우 님의 '아이의 행동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잔소리'라는 글을 만났다.
그에 따르면 자녀와의 소통 1단계는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이다. 2단계로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그다음으로는 잔소리의 목적을 명확하게 전달한 후, 최대한 짧게 현재 상황만을 이야기하며, 마지막으로 적정선에서 타협하고 대안을 제시한다고 했다.
옳은 말씀이다. 비록 나의 현실은 1, 2, 3단계 만을 무한루프처럼 맴돌고 있지만, 그래도 이런 노력을 그만두면 안 된다.
은이가 아빠와의 대화 대신 고독한 침묵을 택할지도 모르며, 거기다 빈이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잔소리의 나비효과까지 생각하면 휴~ 끔찍하기 때문이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휴~ 내뱉으며 1단계부터 다시 시작이다.
* 베이비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