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onlight
Jan 06. 2024
어제는 첫째 아이 졸업이었어요.
졸업식에 참석하는 녀석의 표정이 밋밋하더라고요.
고등생활을 앞두고 학원생활을 이어가고 있기에,
학교생활의 졸업은 기쁨이 되지 못하나 봅니다.
졸업식의 꽃은
꽃이잖아요.
그래서 아내는 녀석이 좋아하는 꽃을 사려
수차례 물었지만,
'필요없어'
'사오지마'
라는 말만 반복했죠.
그래도 아쉬었던 아내는
막내랑 저를 이끌고 꽃집으로 갔어요.
아내는 긴 줄의 끝자락에 섰고
다른 꽃을 감상하던 막내와 저는
수다를 이어갑니다.
"아빠, 이건 조화인데도 너무 비싸"
"그러게. 저기 생화는 엄청 비싸겠다."
"아빠, 근데 저게 왜 생화야. 사화아냐"
갑자기 우리의 수다는
꽃이 언제, 어떤 조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지로 흘렀어요.
(꽃의 죽음은 시들어 줄기나 가지에서
똑 떨어져 버릴 때 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꽃이란 말을 쓰면서
꽃다발에 담겨지는 줄기와 꽃을 함께 생각했어요.)
꽃의 죽음에 대한 논쟁은
아내와 첫째로까지 확장되고
졸업식 후 점심 식사까지도 이어졌어요.
-
큰 줄기로부터 떨어졌을 때
뿌리로부터 잘려지면
떨어진 가지만으로 물이나 흙에 담겨져 다시 살기도 하잖아
그럼 시들어버릴 때
아냐, 나는 시들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또 살려내는 사람도 있더라고
-
답이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마음은 한결 풍성해졌어요.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도 수없이
꽃 피우고 시들고 또 떨어지고
다시 봄을 기다리는 일을 할테고
그 과정에서 맞이하는 좌절과 실패가
죽음이 아니라
다음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임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거든요.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만의 꽃을 피우려는
졸업생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