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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light Sep 02. 2016

사춘기가 찾아온 세 살 쭉쭉이

“안녕하세요. 오늘도 잘 놀았죠?”     


둘째를 데리러 간 어린이집 앞에서 평소처럼 일상을 물었는데, 선생님이 살짝 눈짓을 한다. 함께 간 첫째에게 쭉쭉이를 부탁하고 잠시 선생님과 마주했다.     


“쭉쭉이가 친구랑 다툼이 있었어요. 화해는 했는데 낮잠 자고 일어나서 갑자기 다시 시무룩한 거예요. 속상한 것이 풀리지 않고 생각났나 봐요. 물어도 답이 없고, 오후 간식도 먹지 않았어요.”    


다행히 친구를 때리거나 상처 내진 않았단다. 유도신문을 통해 녀석의 마음을 알아내고 선생님께도 공유하리라 약속했는데...    


돌아서서 녀석에게 다가가니 쭉쭉이 曰      


“나~ 기분이 안 좋아!”    


헉. 뭔가 선제공격을 당한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왜 그런 기분인지를 물었지만 묵묵부답이다.   

  



다시 시작한 언니의 수영 수업을 구경하러 갔다가, 응원도 하고 과자도 먹고 공터에서 뛰며 때 이른 가을바람에 머릿결도 날리고...

그러면서 녀석의 기분은 살아났다.         



집에 온 순간.     


기저귀에 응가를 하고는 너무 불편해서 자긴 바닥에 앉을 수가 없다고 푸념이다.

기저귀와 물티슈를 갖고서 바꿔주겠다고 다가가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가 사다 준 찐빵을 나눠 먹자고 하길래 반으로 잘랐더니,

붙여서 먹어야 한다며 뚝! 뚝! 뚝! 구슬 같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그러고 보니 요즘 한창 그랬다.

식탁에 놓인 그릇이나 수저의 위치에도 민감해하며 한 치의 오차도 용서치 않고 아빠를 나무랐다. 어제와 같은 방법으로 양말을 신겨 주지만 어딘지 알 수 없는 디테일의 차이를 느끼고는 펑펑 울음소리를 낸다. (한참 후 다시 해 주면 이전과 변화가 없는데도 만족해 하며 웃는 모습을 보면 정말 무섭다.) 가만 책 보는 언니 곁을 지나다 어깨툭! 치기도 하고, 마주 보고 웃는 아빠 얼굴을 쥐어짜듯 뜯기도 한다.  


가끔 이렇게 양말을 손에 끼고는 장갑이라고도 말한다.


혹 이것은 미운 세 살의 증상?    


녀석의 마음을 알고자 물어도 보고,
들여다보기도 하지만,
아빠도 녀석도 그 마음을 알 리가 없다.


그나마 녀석이 좋아하는 음악을 켜고,

녀석이 만드는 상황극에 조연으로 참가하며,

다그치는 소리 대신 노래하듯 물어보

호불호의 감정 알려주니    


아직은 '감사한 시기'겠지?

  

십 년 후 진짜 사춘기가 찾아올테고...


어쨌든 오늘 바람은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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