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관리에 실패한 리더
지금 우리 주변을 보면 이상적인 리더의 리더십에 대하여 얘기할 때 다양한 부분들을 얘기하곤 한다. 오늘날은 너무나도 급변하는 시대 탓에 리더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사실, 이는 고도로 기술이 발전하는 오늘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리더들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고 이를 교훈 삼아 지금의 상황과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이번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삼국지 속의 3대 대전 중 하나인 관도대전에서 있었던 원소의 리더십을 파헤쳐 보자.
관도에서 맞붙게 된 원소와 조조
후한 말, 난세에 동탁이 정권을 잡고 그의 폭정에 대항해 함께 벼슬하던 원소와 조조는 각 지방의 제후들과 함께 병사를 일으키게 되고, 동탁이 죽은 뒤(192년) 각자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차근차근 대륙을 제패하기 위한 힘을 기르기 시작한다.
황하강을 두고 하북의 원소와 하남의 조조는 뛰어난 능력으로 각자의 주변을 정리하며 세를 키워나갔고 시간이 갈수록 서로와의 싸움을 필연적으로 여기게 된다. 결국 200년, 두 세력은 관도(지금의 중국 허난 성 중무 현 근처)에서 대전투를 치르게 되는데, 이가 바로 ‘관도대전’이다.
관도대전 당시 원소와 조조는 서로 대륙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이었지만 원소의 군세가 조조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조조군보다 2~3배나 많은 군사를 운용했던 원소군은 결과적으로 관도대전에서 패했고 이후 점점 자신의 영역을 내주며 결국 대륙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탈락하게 된다.
군세가 우세했던 원소, 인재가 없었던 것일까?
구식 전쟁에서는 압도적인 병력 숫자로 승리를 가져오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전쟁은 전략과 전술로 만들어 나가는 것.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에서 수나라를 물리치고, 이순신 장군이 열두 척으로 왜구를 물리친 것처럼 압도적인 병력을 뛰어난 책략으로 무용지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관도대전은 그야말로 원사와 조조의 모사진들의 책략전의 결정체였다.
당시 원소군에는 천재 모사로 불리는 전풍과 저수가 있었고 천재들과 함께 있어 아쉬웠을 뿐, 충분히 능력 있는 곽도, 심배, 봉기 등의 모사들이 줄지어 있었다. 심지어는 원소 진영에서 끽소리도 못 내던 순욱이 조조군으로 넘어가 제1모사로 활약하였을 정도였다.
즉, 원소 역시 조조 못지않게 훌륭한 인재들을 두고 있었고 이에 군세까지 우세하니 선택의 폭이 넓었던것인데 원소는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왜 패배했을까?
조직원들의 불화를 간과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린 원소
반대를 위한 반대를 경계하라
관도대전이 있기 전, 원소는 공손찬을 잡기 위해 약 4년이라는 시간을 들였다. 말이 4년이지 하루하루를 천하제패를 꿈꾸며 살아가는 원소에게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었다. 때문에, 조조 공략을 서두르는데, 총사령관이었던 전풍이 서두르는 것보다는 지구전이 옳다는 전략을 내놓는다. 하지만, 당시 전풍과 저수를 시기하였던 곽도와 심배등은 공손찬 공략에 걸렸던 4년을 지적하며 반대되는 속전속결의 전략을 내놓고, 원소는 곽도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동시에, 전쟁을 앞두고 안일한 태도를 보인다며 전풍을 옥에 가둔다.
물론, 곽도 등이 정말 압도적인 병력으로의 속전속결이 맞다고 생각해 그리 주장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우수한 전력에 심지어 조조군은 군량도 부족했기에 지구전은 시간이 걸릴 뿐 승리를 안겨줄 확실한 길이었다. 결국 전풍과 저수의 말을 반대한 이들의 의견은 반대를 위한 반대였을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그 조직이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할 상황에서, 상대방을 질투하거나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 위해서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조직원이 있다면? 장기적으로 그 조직에서는 경계해야 할 존재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조직원을 경계하고, 더불어 서로 합심하며 한 목표를 바라보도록 조직관리에 힘써야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지만 원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조직원의 말을 귀담지 않는 리더
전풍과 함께 지구전을 주장했던 저수 역시 관도대전이 시작되기 전 패배를 예상했는지 본인의 재물을 일가족들에게 나눠주는 행보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전쟁에서는 계속해서 이기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원소는 이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저수는 백마 전투 당시 교량이라는 지형적 특성에 있어 장수 안량의 공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조언을 하였지만 무시당했고 결국 안량은 백마에서 전사한다. 다시금 지구전에 돌입할 것을 요청했을 때도 원소는오히려 애꿎은 전력을 나누어 소모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후 조조가 원소의 식량기지인 ‘오소’를 공격하려 하자 순우경 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수비 병력을 보내야 한다고 했으나 이 또한 듣지 않았고 결국 오소에서 패해 많은 군사와 식량을 잃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쌓이는 원소의 행보와 그 결과로 나타난 잦은 실패들. 이는 결코 우연이었거나 조조가 더욱 강해서가 아니었다. 조직원들은 서로 시기 질투하며 모략하고 와해되고 있음에도 리더는 이를 정확히 읽지 못했고, 더 나아가 본인의 오만한 태도로 나머지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못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까지 이르렀다.
관도대전 그 직후, 원소는 교훈을 얻었을까?
관도에서 패배 후 저수는 전장에서 조조에 사로잡혀 처형당했고 원소 본인은 오자마자 자신이 말이 맞았음을 떠들고 다닌다는 죄목으로 전풍을 처형했다. 그리고 원소는 이후에 더 나아지지 못하고 오히려 마지막 큰 한방을 보여주며 생을 마감한다.
관도대전 이후 병이 난 원소는 후계자를 정할 때, 장남인 원담과 삼남인 원상과의 트러블을 직접 해결해주지 못했고 원소의 모사들 뿐만 아니라 모든 신하들이 둘로 갈라져 내분이 일어나게 되는 꼴을 자초하였다
. 그 상황에서 본인은 202년 병으로 죽었다.
관도대전에 이어 후계자 문제로까지 이어져 계속 발생한 조직 내부의 불협화음과 구심점이 되어 이를 해결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 원소의 아쉬운 리더십. 결국 원담과 원상은 조조에게 각개격파 당하고 원소 세력은 그렇게 사라졌다.
물론, 원소는 결코 무능한이 아니었다. 군벌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인정받아 입신하여 한때는 대륙의 가장 큰 세력으로 성장한 인텔리전트였다. 조조와의 대결 전에는 당시 아무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장연의 흑산적을 물리쳤고, 이민족들과 싸우며 이미 하북지역을 제패했던 공손찬에게서 그 세력을 뺏어오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왔던 원소였다.
관도에서는 자신의 친구였던 허유의 배신이나 전쟁 이후의 건강상의 문제 등을 거론할 수는 있겠지만, 이전의 행보를 무심케 만드는 말년의 그의 리더십은 승승장구하는 지금의 많은 리더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줄 것이며, 더 나아가 건강하고 상호협동적인 조직의 필요성을 가르쳐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