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초원의 빛

60초 소설 12

by 소요 김영돈



나는 여기 있는데 다들 어디 있는지 물어요.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고 유령도 아닙니다. 어디 그런 사람이 한둘인가요.

'나는 반도땅의 전쟁을 막았어. 이 사람아', 하고 말하고 나면 외로움이 밀려와요.

두 아들과 아내, 눈에 선한 피붙이 21명을 전쟁의 피바람과 바꾸었어요. 그냥 둘걸 그랬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둘 것을,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갈 것을. 저주받은 성미, 역마살이 뼛속 깊이 티눈이 박혔어요.

돌연변이, 독재자, 어처구니, 모리꾼, 파렴치의 치어를 키운 것 같아요.

꿈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말했어요.

북에는 광물이 풍부하고 수입의 8할을 북의 동포가 생산하는데 이역만리 캐나다서 그걸 수입해요. 이놈의 생각의 물고 가 트면, 말 말이 흘러요. 속에서 말들이 넘쳐 나와요. 이 성미가 생에 파란을 일으켰어요.

저쪽에 아내와 두 아들, 이쪽에 아내와 두 딸이 있지만 만나지 못해요. 업보죠. 이 성미. 겨울 저수지를 걸으면 잇몸이 뿌리째 시려요. 치통이 깊어지면 통증이 마음에 닿아요.

욱신하는 통증을 가슴에 부여잡으면 저수지 물고기처럼 생각이 포릭 포륵 떠올라요.


자본주의의 표상 이 땅의 노인복지관 당구대전 3.4 위전.

이번에는 압력솥을 탈거예요. 세 번째 아내가 원하거든요.(여복은 일생 달고 살아요)

마음대로 순위를 정할 만큼의 당구 실력이 왜 생의 각도에는 먹히질 않나요.

모가의 넓푸른 들판에 빛 무리가 와요. 저수지 바닥에서부터죠.

전쟁도 사랑하는 동포도 가족들도 여인들도 모두 저수지에 모여 두련 거려요. 모두 이곳에 수장되었나 봐요.

저토록 눈부신 빛이라니.

빛은 갈색 논두렁 위로 뻗어가며 초원을 수놓아요.

당구대위에 끝없는 초록이 펼쳐져요. 아늑한 지평선너머~ 내 성미가 보여요.


반도땅 전쟁을 막았어도, 동포의 피바람을 막아냈어도 나는 이 땅의 유령입니다.

00 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각도를 가늠해 봅니다.

결코 혈육을 만날 수 없는 각도 사이로 빛이 출렁이는 초록선이 보이고, 그 위로 깊이패인 00 씨의 80년 된 주름이 넘실대요.


이번엔 꼭 밥솥을 탈거예요.

00 씨는 그런 성미거든요.


<2025.2.13. 진가호를 거닐며 신 00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1. 흥례씨가 트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