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타코야끼의 추억
어릴 적, 아버지는 시내에 다녀오는 날이면 꼭 손에 흰 봉투를 쥐고 왔다. 겨울철에는 쥐포나 붕어빵, 풀빵이 단골 메뉴였다. 그중에서도 열에 예닐곱은 흰 설탕이 뿌려진 풀빵이었다. 아버지가 툭하고 건네주면 소복이 쌓인 눈 같은 설탕을 손으로 헤집고 풀빵을 집어 들어 한입에 먹곤 했다. 그게 묘미였다. 입안 가득 들어찬 밀가루와 팥은 날 절로 행복하게 했다.
아마 천 원이면 대여섯 개를 사 먹을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천 원어치를 사도 다섯 명인 우리 가족이 하나씩 먹고 나면 꼭 하나가 남았다. 그건 대부분 내 몫이었다. 내가 꼬맹이일 때 이미 커버린 누나들은 마지막 풀빵을 욕심을 내지 않았다. 사실 먹고 싶었는데도 막내인 남동생에게 양보해 준 것일지 모르지만.
치과 다녀오는 길, 집 맞은편 풀빵 가게가 눈에 밟힌다. 서울에서 무슨 풀빵이냐 싶어 지나치려는데 풍겨오는 기름 냄새가 발목을 잡았다. 어떻게 파시냐 물으니 삼천 원에 열두 개, 오천 원에 스무 개라고. '이게 서울 물가인가' 하고 생각하며 꼬깃꼬깃한 만 원 짜릴 건넨다. 열두 개 든 흰 봉투는 묵직하다. 이 집은 설탕은 안 뿌린단다. 괜히 아쉽다.
집에 돌아와 풀빵을 요리조리 들여다본다. 옛날에 먹던 건 꽤 컸던 것 같은데 작아진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렇다. 아마 내가 훌쩍 커서 그런 걸 텐데, 역시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입안에 넣어 오물오물 씹어 본다. 사랑니 실밥을 풀고 온 터라 양 어금니로 와구와구 씹었다. 풀빵이 원래 이렇게 바삭했던가? 아마 아버지가 사 오던 풀빵은 먼 길을 달려온 터라 눅눅해질 수밖에 없었겠지. 바삭한 게 맛있긴 한데, 그 눅눅함이 그리운 건 기분 탓인가.
그러고 보니 요즘 길거리에서 풀빵집을 보기가 어렵다. 붕어빵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지 궁금해 알아보니 팥 가격이 많이 올랐단다. 지난해 기록적 장마로 팥 수확량이 급감한 탓이라고. 코로나도 물론 한몫했다. 풀빵 하나 먹는데 별 걱정을 다하게 된다. 장마의 다른 이름이 기후위기랬는데, 이놈의 기후위기가 내 추억까지 위협하고 있다. 그럴 순 없다. 풀빵을 지켜내야 한다.
서너 개 먹으니 배가 더부룩하다. 어릴 적엔 대여섯 개를 혼자 다 먹었는데, 적당히를 아는 것 보니 나도 정말 어른이 된 건가. 풀빵 하나 먹는데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풀빵마저 사라진다면 난 어디에 기대 살아야 하나. 어쨌거나 풀빵은 사라져선 안 돼. 여러 나쁜 놈(?)들이 풀빵을 길거리에서 몰아내고 있다. '세상이 참, 서민들을 안 도와주네.' 생각이 문득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