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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Feb 17. 2021

스마트폰이 어려운 우리 아빠

기차표 취소 대소동

엄마의 검진 때문에 다음 주면 서울에 오는 부모님. 설 연휴에 내려가서 기차표를 예매해 주고 왔다.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예매하는 방법을 모른다. 내가 깔아 놓은 어플로 승차권 확인도 겨우 하는 수준이니.. 몇 번 가르쳐 보려고도 했는데, 매번 까먹거나 이해를 잘못 하는 터라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오늘 사달이 났다. 원래 월요일에 올라왔다가 수요일에 내려가는 일정이었는데, 월요일에 다른 일이 생겨버린 탓에 월요일 표를 취소하고 화요일로 다시 예매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 언제나 그렇듯 아빠는 전화를 걸어왔다. 


"성아, 표를 취소하고 다시 예매해야겠는데."

아뿔싸. 어떻게 설명해야 아빠가 제대로 알아먹으려나.. 일단 아빠가 통화하면서 다른 어플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재빨리 파악한 뒤 전화를 끊고 엄마 번호로 전화를 건다.


처음 아이디어는 '엄마 폰으로 영상통화를 연결해 아빠 폰을 비추게' 하는 것. 그 찰나에 나름 참신하다고 생각했다. "아빠. 내가 영상통화 걸 테니까 받아 봐." 손녀들 얼굴을 보려 영상통화를 자주 하는 터라 받는 건 수월했다. 그런데 연결 상태가 안 좋은지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 설상가상으로 화면도 끊긴다. "아빠. 화면을 돌려서 휴대폰을 비춰 봐." 아빠 말이 툭툭 끊기더니 전화가 끊어진다. 후면 카메라로 전환하라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영상통화 시도는 실패.


결국 내 폰에 어플을 깔았다. '승차권 환불'을 위해 아빠가 밟아야 하는 단계를 똑같이 밟으며 말로 설명하기로 했다. 승차권 확인이나 취소 화면이 어떻게 뜨는지 봐야 하기에 아무 표나 재빨리 예매도 했다. 다시 건 전화. "아빠. 아래 승차권 확인 있제? 그거 눈지르면 표가 뜰 거라. (아. 나는 아버지와 경상도 사투리로 소통한다) 그 왼쪽 아래에 승차권 환불 눌라 봐." 다행히 잘 따라온 아빠. 승차권 환불을 눌렀다.


"로그인을 하라고 뜨는데." 이럴 수가. 내가 해 놓은 로그인이 그새 풀렸나. 아빠한테 로그인부터 시켜야 하는구나. 로그인 - 취소 - 예매까지 내가 잘 설명할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감이 바닥에 추락한다.


아, 일단 내가 아빠 아이디로 로그인한 뒤에 취소랑 예매를 하고, 아빠한테는 로그인만 시키면 되겠구나. 유레카. 아빠한테 2분만 기다리라고 일러 놓은 뒤에, 재빨리 로그인해 취소와 예매를 완료한다. 나는 순식간인데, 아빠한테는 만고의 시간이구나. 세상이 아빠에게만 불친절한 건가.

우리 아빠(와 나)를 괴롭게 한 요놈의 SRT 어플.

"아빠. 이제 로그인만 하면 된다. 잘 들어봐. 맨 처음 화면에서 왼쪽 위에 석 삼 자 있제?" 보통 '메뉴'를 의미하는 三 모양을 아빠 눈높이(?)에 맞춰 '석 삼'으로 설명했다. 단박에 알아듣는 아빠. '로그인' 화면까지 잘 들어갔다. 다행히 아이디는 자동 입력된 상태.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끝이다. 


비밀번호에는 '영타'로 친 아버지 이름도 들어 있다. 어차피 이렇게 설명하면 못 알아들을 테니, 알파벳을 하나하나 불러준다. "아빠. 영어다. d… u…" 알파벳을 하나하나 찬찬히 부르면서 '아빠가 영어를 못 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이 든다. 한 번은 실수할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바로 성공.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다시 예매한 승차권 확인까지 시키고 오늘의 난리는 마무리.


"아빠. 힘들었죠. 수고했어요." 진심이 담긴 말을 건넨다. 옆에서 엄마도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는지 한마디 붙인다. "명성이가 더 수고했다~" 따지면 엄마 때문에 하는 수고인 걸 아는지, 괜히 미안한 목소리로 들린다. 


"아니. 엄마 아빠가 고생이지. 끊을게요. 쉬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못내 울컥한다. 세상이 못 따라오는 사람들 남겨두고 너무 빠르게 달리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IT 회사에서, 온라인에 글을 써 올리는 일을 하는 내게,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없는 걸까. 하여간 조금 더 친절하고 상냥한 아들이어야 하는데 맘과 말이 달라서 여럿 고생이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생각만 깊어가고, 답은 뵈지 않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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