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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 스톡, 앤 배럴

모든 것을 품다

‘Lock, Stock, and Barrel(락, 스톡, 앤 배럴)’


이 묘한 운율의 표현은, 의미며 구조며 뭔가 꽉 차 있는 그런 느낌이 듭니다. 가령 누군가가 “The company was sold lock, stock, and barrel.”이라고 말하면, 회사의 건물, 기계, 직원, 심지어 부채까지 다 넘겨졌다는 뜻이 됩니다. 전부 다, 몽땅.

Lock,_stock_and_barrel.png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이 표현은 총과 관련이 있는데, ‘락(lock)’은 점화 장치, ‘스톡(stock)’은 개머리판이라고 부르는 나무 손잡이, ‘배럴(barrel)’은 총알이 발사되는 긴 관인 ‘총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셋을 다 가졌다는 것이 바로 총의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구요.


언어학적 관점에서 이 표현은 셋을 나열하는 구조(tricolon)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읽고, 쓰고, 말하다', 혹은 '대추, 밤, 감' 처럼요. 셋이 나열되면 튼튼하고 완전해 보입니다. 사람은 세 번 정도의 울림을 노래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는 듯합니다. 이 표현 역시 그렇게 완전함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조각으로 살아가는 제 삶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SNS에 올리고, 글로 쓰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상대의 일부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진실을 다 드러내거나 보려 하지 않고, 불편한 그림자는 뒷전에 밀어두게 됩니다.


칼 구스타프 융은 자신의 좋은 면뿐만 아니라, 실패한 선택, 어리석었던 기억 같은, 우리가 외면하는 그림자까지 끌어안지 않으면 진정한 자기실현(Self-realization)은 어렵다고 했습니다. ‘전체’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시작이란 의미이지요. (* 융 심리학에서의 ‘Self’는 자아(Ego)와 무의식 전체를 포함하는 전체성을 의미해서, 이 전체성에 도달하는 과정을 자아실현 대신 흔히 ‘자기’ 실현이라 번역합니다.)


불완전하고 서툰 모습도 결국 모두 나를 이루는, 꼭 껴안아야 할 조각들입니다. 저는 이제 저 자신부터 Lock, Stock, and Barrel로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한 송이 꽃에서 천국을 본다”

- William Blake, 윌리엄 블레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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