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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프고트

희생양의 사회


“다 그 사람 때문이야!”


직장에서, 때로 가정에서 우리는 종종 문제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곤 합니다. 'scapegoat(스케이프고트)'는 바로 그런 '희생양'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성경 번역가인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이 히브리어 '아자젤'을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했다고 합니다. 'escape'에서 유래한 'scape'와 'goat'를 결합하여 'scapegoat'를 만들었고, 이는 '도망치는 염소' 또는 '죄를 짊어지고 떠나는 염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scapegoat'라는 단어가 대중화된 것은 19세기 프레이저(James George Frazer)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 덕분입니다. 프레이저는 여러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대속(代贖, 남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거나 속죄함)' 의식을 분석하면서 이 용어를 학술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는 한 개체가 집단의 죄나 불운을 떠안고 추방당하는 의식이 존재했다는 것이죠.


<집단 심리의 어두운 면>

프랑스의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인간 사회에서 ‘스케이프고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했습니다. 집단에 갈등이나 위기가 생기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원인을 하나의 대상에게 집중시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죠.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수많은 원인들(소통 부족, 자원 부족, 시장 변화, 리더십 부재)을 분석하기보다는 '저 사람 때문'이라고 지목하는 편이 훨씬 단순하고 명쾌해 보입니다. 가장 약한 구성원, 가장 다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받기 쉽습니다. ‘문제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모든 불화를 혼자 떠안고 떠나면 다시 평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자발적 희생양>

때로는 스스로 스케이프고트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합니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 조직의 안정을 위해 스스로 모든 잘못을 떠안고 물러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참으면 된다', '내가 희생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변방으로 내모는 경우입니다. 언뜻 숭고해 보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방해하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패턴을 고착화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눈치'와 '희생정신'이 미덕으로 여겨지면서, 자발적 스케이프고트가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술을 들이켜고 가족 모임에서 뒷정리를 도맡거나, 팀 프로젝트에서 모든 잡일을 떠안기도 합니다.


<복잡성을 받아들이는 용기>

스케이프고팅의 유혹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면 이런 복잡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쉬운 해답을 찾기보다는 각자의 책임과 역할을 생각해 보고, 시스템 자체를 점검해야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묻는 대신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묻는 순간, 우리는 진짜 해결책에서 멀어집니다. 돌이켜보면 저 역시 누군가를 스케이프고트로 만든 적도, 반대로 그 역할을 떠맡은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성숙은 스케이프고트 만들기를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 때문인가?'보다는 '어떻게 함께 해결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지만, 그래야만 진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요.


오늘도 누군가를 쉬운 해답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과 나 자신이 모든 것을 떠안으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복잡한 삶 속에서도 진실을 찾아가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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