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성장 사이
안정감을 주는 물건, 다들 하나씩 있으신가요? 아이들이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는 담요나 인형 같은 물건을 'Security Blanket(시큐리티 블랭킷)'이라 부릅니다. '블랭킷'이니 당연히 담요를 뜻하지만, 지금은 어떤 형태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대상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이 표현이 대중화된 데에는 찰스 슐츠(Charles M. Schulz)의 인기 만화 '피너츠(Peanuts)'의 역할이 컸습니다. 등장하는 강아지의 이름 ‘스누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만화에서, 라이너스 반 펠트(Linus Van Pelt)라는 캐릭터는 항상 파란색 담요를 끌고 다니고, 이 담요가 없으면 아주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라이너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할 정도로 지적이고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 똑똑한 아이지만, 한편으로는 담요에 의존하는 유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전이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고 부릅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이 처음 제안했다고 하는 이 개념은, 아이가 부모와의 분리 불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특정 물건에 애착을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는 이 전이 대상을 통해 보호자가 없더라도 안전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전이 대상을 찾는 것은 왜일까요? 단지 미성숙의 표현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불안을 다루는 지혜로운 본능일까요?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불안을 부정하려 합니다. 하지만 불안은 자유로운 이성을 지닌 인간의 필수적인 감정이며 자기 성찰의 계기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와 같은 사람은 불안을 ‘자유의 현기증(the dizziness of freedom)’이라고도 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선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의미이지요.
'Security Blanket'과 물리적으로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Comfort Zone(컴포트 존)'이라는 표현이 생각납니다. 익숙함과 안전함을 주는 환경이자 우리가 불안을 피해 머물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
성장은 이 'Comfort Zone'을 벗어날 때 일어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곳을 완전히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오히려 우리에게는 안전하게 돌아올 '기지(base)'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라이너스는 점점 담요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갑니다. 작가 슐츠는 "라이너스가 담요를 극복했다"고 했습니다. 결국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라이너스가 외부에서 얻던 안정감을 스스로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각자의 Security Blanket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는 안정감을 내면화하는 것이겠지요. 그 어떤 것에도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필요할 때 그것을 활용할 줄 아는 균형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정만 추구하면 성장이 멈추고, 불안만 감내하면 소진되듯, 담요를 끌어안기도, 때로는 그것을 내려놓기도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무색하게 제게는 지나치게 집착하는, 매일 봐야 불안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소중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 훌쩍 커버린 딸이 15년 전 그려준 나무와 수호천사의 그림입니다. 아빠의 의지력 나무, 그리고 그걸 지켜주는 수호천사는 딸입니다. 전 불안하면 늘 수호천사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