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2

내 존재의 목적이 고기였다니...

by Dr Meister 유병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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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내 심장은 늘 빨리 뛰었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어차피 날 먹을 거라면 왜 지금껏 살려두고 있겠어? 아침 일찍 사료를 채우고 축사를 치우며 구슬땀을 흘리는 주인아저씨를 보며 생각했다. 게다가 주인아저씨가 먹기엔 축사 안의 돼지들이 너무 많았다. 축사 안의 모든 돼지를 먹으려면 최소한 10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그리고 사료를 늘 가득 채워주는 걸 보니, 주인은 먹을 것이 넘쳐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굳이 역한 냄새가 나는 돼지를 먹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주인아저씨는 돼지만 키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식들도 셋이나 있었고 개도 5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것들도 먹기 위해 키운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 내가 고기 냄새를 잘 못 맡은 걸까? 하지만 내 후각은 너무 예민해서 축사 밖 500m 거리에 있는 꽃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고, 그 길을 따라 걸어오는 주인아저씨의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곧 주인아저씨가 축사 안으로 들어서는 걸 보아 내 후각은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고기 냄새로 시작된 의심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러 가지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내가 태어난 뒤 젖을 먹으며 함께 있던 4주의 기간 동안 엄마는 한 번도 날 쳐다보지 않았다. 4개월마다 인공수정으로 12마리씩 새끼를 낳은 엄마는 늘 지쳐 쓰러져 있었다. 자식들이 젖을 먹던 안 먹던 신경 쓰지 않았고, 뒤척이다 새끼가 배에 깔려도 그대로 놔두어 죽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젖이 잘 나오는 아래쪽 젖꼭지를 차지하기 위해 형제들과 몸싸움을 벌이면서도 엄마 몸에 깔리지 않게 주의해야 했다. 모성애마저 사라진 채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엄마는 우리가 태어난 이유를 혹시 알고 있었을까? 주위를 다시 천천히 둘러보았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락하는 작은 우리, 늘 가득 채워지는 사료통, 하루가 다르게 살이 불어나는 나의 모습. 혹시 이게 많은 양의 고기를 얻기 위한 인간들의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면? 자세히 보니 축사 안의 돼지우리마다 이동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태어나서 4주간은 엄마와 함께 있었고, 그 뒤 8주간은 따듯한 새끼돼지우리에서 자랐다. 몸이 좀 커지고 나서 지금 있는 우리로 왔고, 2주마다 축사 입구 쪽을 향해 한 칸 한 칸 옮겨졌다. 그리고 일주일마다 축사 입구 쪽 우리에 있던 돼지들은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심장이 요동쳤다. 맞아… 이게 맞는 것 같아. 진짜였어. 나를 먹기 위해 키운다는 게… 서러움이 왈칵 밀려왔다. 내가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문득 내 눈에선 구정물 같은 눈물이 흐른다는 걸 깨닫고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곤 곧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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