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서는 언어교육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서는 언어교육
5월이 끝나갈 무렵 3학년 학생들 시험을 쳤다. 중간고사다. 시험을 치기 전, 나는 먼저 시험에 대해 말했다. 이번에 치는 시험은 중간고사입니다. 중간고사는 언제 치는 시험인가요? 중간이 무엇인가요?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니 처음-중간- 끝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되었다. 그리고 학기에 대해 말하고 아울러 개강과 종강에 대해서도 말했다. 개강이 무엇입니까? 또 종강은 무엇입니까? 한국어에는 한자어로 된 단어들이 많으니 설명을 여러 번 해야 한다.
“개강이라는 단어에서 ‘개’는 시작을 뜻해요. 그러니까 개강은 강의를 시작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들은 3월 13일에 개강을 했어요. ‘종’은 마친다는 뜻이에요. 여러분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면 아마 7월에 종강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개강부터 종강까지의 기간을 학기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3학년 2학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다보니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아이들은 3학년이 되어서도 아직 대학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당연히 그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학생활에 대한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겠지만, 한국어로 그와 관련된 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험은 대부분 교재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출제했으며 마지막에는 <쓰기> 문제로 졸업 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쓰라고 했다. 1학년 시험 칠 때 느낀 것이지만, 시험에 대비해서 특별히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3학년도 비슷한 것 같았다. 시험을 치는 중간에 돌아보니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보기에 제시된 단어를 찾아 문장의 괄호 안에 넣는 문제도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아이가 더러 있었다. 그 문장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교재에 나오는 문장이고, 단어 역시 교재에 나오는 단어인데도 그렇다. 시험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한국어 공부 자체가 어려워 수업 시간에 따라오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공부가 그러하듯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 자꾸 쌓이게 되고 그 과정이 반복이 되면 교재에 그대로 나오는 것이라 하더라고 제대로 읽지 못하니 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책을 통해 더 많은 양의 학습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적은 내용이라 하더라도 정확하게 읽고 쓰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함으로써 언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하는가? 고민스러운 지점이다.
사무실에 들어와 채점을 해 보니 역시 개인차가 제법 컸다. 만점을 받은 아이가 한 명 있기는 했지만, 몇몇 아이는 채 40점을 받지 못했다. 중간 정도의 성적을 받은 아이들이 많았지만, 생각만큼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좀 특이했던 점은 수업 시간에 열심히 따라오고 또 나름대로 한국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된다고 생각했던 아이나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몸이 안 좋아 네 달 만에 돌아온 아이 역시 만족할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재의 내용이 단순히 소통의 수준을 넘어서 있고 짧은 한국 경험만으로는 교재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인 듯했다.
시험의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언어교육은 단순한 소통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의사소통만을 위한 언어교육은 대학에서 4년 간 배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다면 한국어로 이루어진 많은 것을 알고 그것을 내재화시켜야 한다. 한국어로 만든 한국의 문화, 한국인의 생각,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한국인의 삶에 한 걸음 더 들어가도록 하는 것이 한국어교육의 목적이다. 나는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것을 보면서, 또 시험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교육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