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내게 남은 캄보디아 시간, 그 흔적들 3

캄보디아에서 맞이한 설날

by 지천

캄보디아에서 맞이한 설날

설날이다. 군생활 할 때를 제외하고 설 제사에 참여를 하지 못한 것이 처음이다. 그래서 영상으로 보내오는 화면을 바라보며 제사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오늘은 제사를 모시기 전에 아이들과 조카들이 세배를 할 것 같아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났다. 그래도 한국 시간으로는 아침 9시. 생각했던대로 곧 전화가 오고 아이들 기다린단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영상으로 전해지는 세배를 받았다. 우리 아들 둘, 그리고 조카 둘, 덕담을 건네며 세뱃돈은 큰어머니에게 받으라 했다. 우리 아이 둘은 대학 졸업 후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잘살고 있고 또 조카 둘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 큰 조카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는데, 회사에서 대학원을 시켜준다고 해서 올해 대학원 수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교수를 도와주면서 생활할 거란다. 둘째 조카는 우리 집안에서 보기 드물게 딸로 태어나 지금은 서울시립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난해 휴학을 했다고 들었는데 이번 학기에 4학년으로 복학을 한단다. 그리고 7월 경에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간다 하니 나름 열심히 잘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영상으로 보내오는 제사 모습을 보면서 머나먼 타국에 와 있다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되었다. 지금까지는 늘 내가 제사를 주관해 왔기 때문에 나이 육십이 다 되어가는 동생도 제사 지내는 순서를 잘 모른다. 그러니 아이들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영상으로 절 두 번 하고 젓가락 옮기고 다시 술을 따른 뒤 한 사람씩 차례대로 나와서 절을 하게 하고……. 제사는 금방 끝이 났다. 나 없이 제사를 모신다고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예년보다 조금은 일찍 우리집에 온 동생네 가족이 애를 많이 썼다. 제사는 돌아가신 분을 떠올리며 추억하고 그분들의 평안함을 기원하는 의례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일 년에 두 번, 설이나 추석에 만나 서로 살아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또 정을 나누는 그런 의미가 명절에 담겨 있는 것이다. 평소에도 그런 생각을 해 왔지만, 이렇게 멀리서 그 모습들을 바라보니 가족 간의 정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제사가 끝나고 둘째 아들이 휴대폰을 들고 마당에 있는 우리 집 개, 마루에게 다가갔다. 제사 지내는 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이놈은 뭐 먹을 것 주러 왔나 싶어 내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둘째만 바라본다. 내가 마루야 하고 불러도 보지 않는다. 내가 집을 떠나온 지 한 달 반 정도 지났는데 벌써 나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집에 있을 때는 내가 가장 많이 산책을 시키면서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벌써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일 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이할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하긴, 개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고 또 그러리라 기대하는 내가 조금은 이상하기도 하다. 그래도 한 번쯤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이제는 개도 가족의 한 구성원처럼 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제사가 끝나는 모습을 지켜본 뒤 세탁기를 돌렸다. 바탐방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빨래다. 바탐방으로 완전히 옮기기 직전, 프놈펜 호텔 근처 빨래방에서 모두 세탁을 해 왔기에 지금까지 빨래를 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집 정리를 했다. 빨래가 끝났다는 신호를 듣고 세탁기를 열어 빨래를 보니 옷에 찌꺼기가 많이 묻어나왔다. 오래 사용하지 않아 세탁기 안이 더러웠던 모양이다. 옷에 묻은 것 털어내고 또 방바닥에 떨어진 찌꺼기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덧 9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다. 한국 시간으로 11시를 넘겼으니 가족들이 곧 어머니 면회를 갈 시간이다.

어머니는 집에서 멀지 않은 진명요양원에 계신다. 치매가 심해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또 시간이 지날수록 살은 빠지고 주름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래도 전에 비해 팔을 움직이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조금은 부자연스럽고 또 먹을 때 많이 흘리시기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더 자연스럽게 음식을 드시는 것 같다. 아이들이 안마를 해 주고 또 가져간 음식, 홍시나 카스테라, 두유 등을 드시도록 도와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덩달아 누나와 여동생도 영상으로 만날 수 있어 더 좋았다. 면회는 원래 30분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명절이라 그런지 한 시간 정도 지나도 끝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진명, 참 고마운 곳이다. 사람들도 좋고 어머니도 잘 적응하시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지금도 그러하다. 면회가 끝나면 동생네는 다시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처가가 경기도 화성에 있으니 몇 시간을 달려야 할지 모른다. 다음 설 명절 때는 나도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와 먼 길 조심해서 올라가라는 이야기를 한 뒤에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바탐방에 있는 봉사단원과 함께 바탐방 기행을 나섰다. 일전에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긴 했지만 그리 먼 곳으로 가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툭툭을 타고 40여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킬링 케이브와 박쥐동굴을 둘러보기로 했다. 어플로 툭툭을 부르니 금방 아파트까지 와서 같이 길을 나섰다. 학살동굴과 박쥐동굴은 캄보디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언급했으니 여기서는 간단하게 오고가며 느낀 것만 정리한다.

바탐방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다. 캄보디아의 밥그릇이라 부를 정도로 넓은 들판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어 금방 푸른 들판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도심을 벗어나는 일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포장이 되지 않은 골목길이 많아 먼지가 많았고 또 구불구불한 길도 많았으며 덜컹거리는 길 또한 더러 있었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서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 달렸고 상대적으로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해졌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러 가지 색깔들이 어우러진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순간은 이전의 불편함을 몸 밖으로 밀어내기에 충분했다. 프놈섬퍼에 도착하여 먼저 킬링 케이브를 둘러보고 산길을 걸어 산 정상에 위치한 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드넓은 바탐방 평야를 바라보았다. 사방이 들판이다. 군데군데 인가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벼가 자라고 있는 들판이 눈을 시원하게 했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에 원숭이들을 많이 만났다. 대부분 무심하게 우리를 바라보는 것 같았는데 몇 마리 원숭이는 우리를 따라 어슬렁거리며 내려왔다. 저놈들이 덤비면 어쩌나 약간 걱정이 되기는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박쥐동굴이 있는 곳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생각보다 박쥐들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이미 해는 져 버리고 숙소로 돌아갈 길이 막막해져 버렸다. 어플로 툭툭을 불렀지만 그곳까지 오겠다는 툭툭은 없었고 그렇다고 빈 택시를 잡을 수도 없었다. 박쥐동굴 앞에 모여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고 길거리에서 물건과 음식을 파는 사람들도 하나둘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다행히 차량을 한 대 소개해 주어 그 차를 타고 바탐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차에 내비게이션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어렵게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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