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내게 남은 캄보디아 시간, 그 흔적들 10

부처님 오신 날

by 지천

부처님 오신 날

오늘은 캄보디아 부처님 오신 날이어서 휴일이다. 원래 수요일은 수업이 없기 때문에 휴일이나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 공식적으로.

아침 여섯 시에 눈이 떠졌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데, 요즈음은 가끔 이렇게 일찍 눈을 뜨는 날이 제법 된다. 날씨가 더워서 그런 것만은 아닌데, 생각하며 다시 누워보았지만 잠은 이미 멀리 달아나버렸다. 어제까지 보던 책을 보다가 또 어제 쓰다가 만 일기를 마저 썼다. 그 사이 아침밥을 간단하게 먹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책읽기를 계속하면서 어제 못 한 빨래를 하기 위해 세탁기를 돌렸다.

10시에 주차장에서 박선생님과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다. 빨래를 말리고 가면 약속 시간에 좀 늦을 듯하다. 급히 10분 정도 뒤에 만나면 어떻겠냐는 문자를 보내고 급하게 빨래를 널었다. 주차장에 내려가니 박선생님이 이미 내려와 기다리고 있다. 세탁기 돌리느라 늦었다고, 미안하다는 인사를 건네니 괜찮다고 했다.

오늘은 캄보디아 부처님 오신 날, 어제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면서 오늘 아침 10시에 만나 바탐방에 있는 절을 둘러보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만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같이 상커강 옆에 있는 절에 갔는데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평소 절에 갔을 때 본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 맞나? 이곳 사람들 95%가 불교 신자라는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서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자전거를 탄 채로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마침 독특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모래를 쌓은 곳에 얇은 나뭇가지 같은 것이 꽃혀 있었고 그 옆에서는 아주머니 한 분이 모래 위에 다시 가는 나뭇가지를 꽂으면서 동시에 그 위에 젖은 모래를 뿌리는 풍경이었다. 입으로는 연신 무어라 중얼거리는 것 같았는데, 아마 소원을 비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절에 있는 모래산은 인간이 지은 죄를 형상화 한 것이라 한다. 태어나면서 지은 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죄, 살아가면서 지은 죄 등 그 사람이 지은 죄를 모아놓은 것이 모래산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이 지은 죄가 많다는 뜻도 담겨 있단다. 그래서 그 모래산에 향을 꽃고 기도를 올림으로써 살아가면서 지은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고 더 나아가 앞으로의 일이 잘 풀려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 모습을 한참 보다가 사진을 찍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절을 떠났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자전거로 달리기에 참 좋은, 무척이나 한가한 길이다. 가는 길, 사원 두어 군데 더 들렀는데 역시 너무나 조용하다. 다만 행사가 있는지 무대를 설치해 두었다. 물어보니 저녁에 절에서 행사가 있다고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은 우리와 달리 낮시간이 아닌 밤에 행사를 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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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지나 한참을 달리니 길이 끊어지고 그래서 다시 돌아서서 달리다 박선생이 골목길로 방향을 꺾어 들어갔다.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리니 Battambang Resort가 나왔다. 애초 박선생님의 목적지가 이곳이었던 모양이다. 내게 안내를 해 주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 같다. 자전거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니 리조트 안에 작은 카페가 있다. 박선생님은 자리에 앉아 있고 나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봤다.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 가에 Lake 1부터 시작해서 4로 끝이 나는 방 네 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아담하게 보기 좋은 모습이다. 한 바퀴를 돌아오니 수영장이 나오고 우리가 처음 도착했던 카페가 그 옆에 있다. 망고 스무디를 시켜 마시며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어보았다. 퇴직을 한 후 내가 서각과 서예에 관심을 가지고 배웠다는 이야기와 함께. 박선생은 한국에 돌아가 잠시 쉬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퇴직하고 난 뒤 했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릇 만드는 공방 이야기, 양봉 이야기, 그리고 바리스타 자격증 딴 이야기가 박선생님이 주로 한 이야기였다. 학교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하다가 다시 자전거를 타고 바탐방 시내로 들어왔다. 오는 길, 점심을 같이 먹었다. 숙소에 도착하여 잠시 쉬다가 학교로 갈까 생각을 했다. 내일 3학년 시험을 쳐야 하는데 인쇄를 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몸이 가라앉아 그냥 쉬기로 했다. 3학년 학생 숫자가 그리 많지 않으니 인쇄는 내일 해도 될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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