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고부열전
다문화 고부열전
아침 여덟 시, 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 열 시에 아내가 진명고향마을로 어머니 면회를 갔다. 원래는 둘째하고 같이 가기로 했는데 둘째가 일어나지 않아 혼자 갔단다. 진명고향마을은 요양원이다. 그곳에 치매에 걸려 이제는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어머니가 계신다. 원래 상주에 있는 연세요양병원에 계셨는데, 집 가까이 모신다고 해서 지난 2019년 10월에 이곳으로 모셨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진명고향마을로 오신지 벌써 4년 반이 훌쩍 지났다.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동안 상태가 더 나빠져 이제는 자식이나 손자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2020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자주 면회를 갔었고 그때는 생활하고 있는 방까지 가서 모든 것을 살펴보고 대화도 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 때는 면회를 하기 힘들었고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때도 교도소 면회를 하듯이 마이크를 통해 면회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이 3년이고 그래서 어머니의 정신은 더 먼 세계로 가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오후에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원래 그 프로그램을 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캄보디아 역사에 대해 알아보려고 유투브에 들어갔는데 우연히 그 프로그램이 눈에 띄어 보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도 가끔은 본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세계테마기행을 비롯하여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자주 봤는데 그때 이 프로그램도 본 것이다. 비록 몸으로 가보지는 못하지만 그렇게라도 다른 나라 풍광과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본 것은 ‘버럭하는 시어머니, 캄보디아댁 코랍’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살다가 경북 영천으로 시집을 온, 결혼 5년차 샤오 코랍이라는 여성과 시어머니에 얽힌 이야기다. 경북 영천은 농사를 위주로 생계를 꾸려가는 곳이고 이들 역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빠르게 이야기를 했고 그것을 코랍은 어느 정도 알아들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코랍이 사용하는 한국어 역시 경상도 사투리가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한국 사람과 결혼을 했을 것이며 당연히 한국어는 경북 영천에서 생활하면서 익혔을 테니까 사투리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콩농사와 감따기 같은 농사일이 나오고 부지런한 시어머니와 느려터진 며느리가 나온다. 캄보디아에서 온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보기에 낭창한 사람이다. 그래서 큰소리로 부르고 잔소리를 많이 한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코랍의 입장에서는 그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갈등의 핵심은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잠시 어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어머니가 그렇게 큰 소리로 일을 시키고 아이들 주눅들게 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비슷한 경상도 사투리와 농사일에 억척인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이다.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3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언니들의 손에서 자란 코랍, 아직도 코랍이 만든 음식은 짜고 또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 비록 5년의 시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코랍은 아직 캄보디아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남아 있다. 그게 시어머니의 불만이기는 하지만 코랍은 자신을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는 시어머니가 못마땅하기만 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원래 경상도 말이 거칠고 빠른데 거기에 못마땅함까지 얹어 말을 하니 곱게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록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그 말이 나오는 상황,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그 말에 담긴 뜻조차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분위기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시어머니를 닮아가는 듯한 코랍의 모습을 남편이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할까.
이러한 코랍이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동네 밖으로 산책을 나간다. 아무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혼자서 말이다. 코랍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또 집 구석구석 다 찾아보아도 코랍이 보이지 않자 시어머니는 코랍의 여권이 제대로 있는지부터 살핀다. 그러면서 시집와서 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도망을 갔다는 외국인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래서 다시 옷장을 열어보지만 옷은 그대로 있다. 그래도 걱정이다. 급하게 집 밖으로 나와 마을 사람들에게 며느리 못 봤냐고 물어보지만 아무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렇게 마을길을 허둥지둥 걷던 시어머니 눈에 멀리서 걸어오는 코랍이 보인다. 어디 가면 간다고 해라, 괜히 사람 놀라게 하지 말라고 큰소리 치는 시어머니, 그 소리를 듣는 며느리는 속상해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이렇게 이들의 갈등은 조금씩 깊어진다.
딜레마다. 외국에서 온 며느리가 못마땅한 것 투성이지만 그렇다고 보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몰래 떠날까 걱정을 한다. 무엇 때문일까? 어렵게 한 결혼이기에 그럴 것이다. 이 며느리가 떠나버리면 다시는 며느리를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 그리고 이미 자식을 두 명이나 낳았는데 다시 아들이 혼자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 이것이 시어머니가 안고 있는 고민일 것이다. 이 딜레마를 안고 두 사람은 캄보디아 친정으로 향한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의도가 고부 간의 갈등 해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수순이다. 며느리가 살아온 곳에 가서 그들의 삶을 본다면 며느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며느리 코랍의 고향은 캄보디아 따께오. 프놈펜에서 세 시간 걸린단다. 따께오라는 지명이 반갑다. 우리 동기 두 명이 그곳에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기로부터 듣기로 지금은 프놈펜에서 따께오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4년 전인 당시에는 3시간 정도 걸렸던 모양이다. 그곳에서 70세 아버지와 41세 큰언니를 비롯하여 코랍의 가족들을 만난다. 엄청나게 기쁜 모습으로 이들을 환대하는 가족들, 그럼에도 언어가 통하지 않아 그 환대를 몸으로밖에 느낄 수 없는 시어머니, 한국 같으면 큰 소리로 그 기쁨을 나누며 같이 즐거워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그래서 생각한다. 말이 안 통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데 며느리는 5년 간 어떻게 견뎠을까? 가장 초보적인 이해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답답한 면만 봤고, 그래서 말대꾸하면 더 혼을 냈다는 시어머니다. 하지만 코랍의 식구들과 어울리면서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고 그 연장선에서 며느리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진다. 그리고 왜 며느리가 캄보디아 식으로 결혼식을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졸랐는지도 안다. 그 이해의 바탕에는 역시 부족하기만 한 며느리지만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있다. 캄보디아에 와서야 이런 대화도 가능했다.
“엄마, 제가 한국 국적 취득하면 안 될까요?”
“국적 취득 벌써 해가 되겄나?”
“벌써 해도 되지. 결혼한지 5년, 6년인데.”
“엄마한테 전화도 없이 나가뿌만 엄마가 믿을 수 있나?”
“이 정도면 믿을 수 없어요?”
“믿을 수 없지. 니가 자꾸 나가버리니까 겁이 나서 퍼떡 하라 소리도 몬 하겠다.”
“시우 아빠 술 안 먹으면 내가 나가겠나, 나갈 일 있겠나?”
“먹는 술을 우얘 딱 끊어라 하노.”
“하고 싶어요. 내 친구 중에는 내 뒤에 왔는데 벌써 한국 국적 취득이 2년 됐어요.”
“믿으만 하든지 해야지. 생각해 보고 하든지 하자.”
한국에 시집와서 국적을 취득하면 집을 나가 혼자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시어머니는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당연히 반겨야 할 국적 취득 문제에서도 머뭇거리게 된다. 어쩌면 갈등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코랍의 마지막 이야기 속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엄마는 제가 가 버릴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엄마가 저를 가족으로 생각 안 하고 아니면 저를 못 믿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결론은 역시 해피 엔딩. 캄보디아에서 코랍의 참모습을 본 시어머니, 그리고 시어머니의 속내를 알게 된 며느리 코랍은 서로를 이해하며 한국에 돌아가서 더 행복하게 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