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에 담지 못한 이야기

더운 나라에서 배드민턴 치기

by 지천

더운 나라에서 배드민턴 치기

오전에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왔다. 집 근처 맹인이 하는 가게다. 아내가 있을 때 더러 갔는데, 아내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난 뒤에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간다. 가격이 비싸지 않고 또 솜씨도 제법이다. 처음에는 함이라는 여자에게서 받다가 요즈음은 스레이히읗이라는 여자에게 계속 마사지를 받고 있다. 역시 아내가 추천을 해 준 사람이다. 그들은 간단한 영어를 할 수 있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한 시간 반 정도 마사지를 받을 예정이다, 좀 강하게 하면 좋겠다, 어깨와 목 부위가 좀 불편하니 그곳에 더 집중해서 하면 좋겠다 등등. 마사지를 받고 나서 오랜만에 옆 가게에 가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셨다. 그동안 학교 연못 옆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그 때문인지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한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고 다른 음료를 마셨는데 오늘은 괜히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잠시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괜찮을 거라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 마셨다. 잠이 안 오더라도 하고 싶은 것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역시 나를 그곳으로 이끌고 갔으며 그것은 곧 나에 대한 위로였다.

네 시에 주차장에서 박선생님을 만나 배드민턴을 치러 가기로 했다. 네 시가 다 되어 갈 무렵 갑자기 천둥이 치면서 비가 올 듯하여 잠근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가 우산을 가방에 넣었다. 혹시 비라도 온다면 우산을 쓰고 자전거를 끌고 올 생각으로.

자전거를 타고 박선생님 뒤를 따라갔다. 박선생님은 벌써 저만큼 앞에 가고 있다. 늘 그렇다. 같이 출발을 해도 늘 앞서 달린다.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잘 따라오겠지 하는 믿음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차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뒤섞인 길에서 뒤돌아볼 여유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나 역시 멀어져가는 박선생님을 뒤따를 뿐이다. 나도 자전거를 제법 탔는데, 1박2일, 2박3일 자전거를 타기도 했고 일본으로, 대만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는데 왜 자꾸만 뒤로 쳐지는 것일까? 자전거 탓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한 번은 옆에서 달리면서 자전거 밟는 속도를 비교해 봤는데, 내가 더 자주 밟는 것 같긴 했다. 아니면 내 체력 때문인가?

오늘 역시 뒤따라가다가 코너를 돌아서 가는 박선생님을 놓쳤다. 비록 몇 달이 지났지만, 그래도 전에 한 번 가 본 구장이어서 별 걱정하지 않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구장은 문이 닫혀 있고 박선생님 자전거도 보이지 않았다. 아닌가 생각하면서 앞으로 더 전진해서 다음 골목으로 들어가 봤지만 아예 구장 형태의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돌아나와 다음 골목을 들어가 봐도 마찬가지.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길가에 있는 집 처마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박선생님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 않는다. 전화기가 가방 안에 있거나 운동을 시작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 비를 맞으며 다시 첫 골목으로 들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구장, 문이 닫혀 있는 건물을 지나 조금 더 가니 익숙한 건물이 나타났다. 배드민턴 구장이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는 구장 안에 세울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다행히 비를 맞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비를 제법 맞은 상태로 안으로 들어가니 박선생님은 이미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간단하게 몸을 풀고 나서 그 다음 게임에 들어갔다. 두 게임을 하는데 완전 엉망이었다. 콕은 라켓 어디에 맞았는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기가 일쑤였고 라켓에 구멍이 뚫렸는지 콕이 제멋대로 뒤로 가기 다반사였다. 젊은 학생들, 아니 어리다고 할 수도 있을 아이들과 파트너가 되어 쳤는데 그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캄보디아에 와서 지난 2월에 한 번 치고 오늘 두 번째여서 그런가? 아내가 한국에서 갖고 온 내 라켓으로 치는데도, 역시 아내가 한국에서 가지고 온 내 운동화를 신고 치는데도 실수하고 또 실수한다.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함께 두 게임을 하고 나니 온몸이 물에 젖은 듯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물을 마시면서 앉아서 쉬다가 다시 게임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장년층들이다. 박선생님은 다른 코트로 가고 나 혼자 캄보디아 장년과 파트너가 되어 게임을 하게 되었다. 첫 번째 게임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버벅거리는 시간이 많았다. 게다가 네 번째 게임에서는 다리가 풀렸는지 빠르게 이동하기도 어려웠다. 체력이 이렇게나 떨어졌는가, 더운 날씨에 배드민턴을 치는 것이 역시 무리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번에도 역시 함께 한 파트너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눈으로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고 구장 주인 여자에게 1달러를 준 뒤 구장을 나왔다. 어느새 비는 그치고 그만큼 상큼한 공기가 더운 몸을 식혀준다.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다음 주 박선생님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이제 배드민턴 치러 오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거의 매일같이 배드민턴을 친다는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려면 내 실력을 더 키워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겠구나, 더구나 나 혼자 구장에 찾아가서 그들과 어울릴 수는 있을까? 몸은 시원한데 마음은 그리 시원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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