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히 써보다가 생긴 일
어떤 달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추위가 걷히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는 3월, 꽃이 만발한 5월, 싱그러운 6월도 좋지만 저는 9월을 가장 좋아합니다. 9월이면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조금 실수하고, 조금 미치지 못한 목표를 가다듬고 한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힘을 내보는 겁니다.
9월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글쓰기가 좋은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9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윤리 수업 중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시가 한편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9월
뜨거운 열정의 끝에서
눈물처럼 찾아온 차분함이여
숨 가쁘게 달려온 한구비 돌아
다시 시작하는 새로움으로
끝을 맺지 못한 것 같은 4줄이지만, 저는 자꾸 읽어볼 만큼 만족스러웠어요. 작문 숙제나 실기평가 때문에 쓴 적은 있어도 스스로 시를 써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9월’이 저의 첫 번째 시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학창 시절에는 한 번쯤 문학소년, 문학소녀가 되곤 합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아니었나 싶어요. 여기까지는 누구나 경험해 봤을 법한 흔한 이야기이지요.
중요한 것은 그다음부터입니다. 그날 이후로 특별한 감상이 떠오르거나 낯선 상황을 만나면 시로 표현해 보곤 했습니다. 꾸준히 쓰게 된 거지요. 그중에서 맘에 드는 시들은 SNS를 통해 주변 사람에게 슬쩍 공개하고, 공모전에 제출해 보기도 했어요. 대부분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가끔 공감해 주는 친구도 있었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시가 60편이 넘습니다. 100편 정도 모이면 시집을 한 권 내볼까 생각 중입니다.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부터는 소설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분야를 넓혀본 거지요. 무작정 경험한 일들 중 흥미로웠던 일을 각색해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한 장 정도 쓰고 나면 더 쓸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더군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틈틈이 생각날 때마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소설 쓰기에 관한 책도 읽어보았습니다. 그렇게 수년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깨달음이 왔어요.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쓰자. 일단 한편을 마무리 지어보자. 그렇게 맘을 바꾸고도 3년이 더 걸려서 세 편을 완성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소설을 구상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시간은 많이 걸릴 듯하네요.
글쓰기와 관련해서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습니다. 먼저 꾸준히 썼다는 거에요. 과거에 썼던 시를 보면 무슨 뜻인지 모를 문장이 가득합니다. 소설은 과도한 설정으로 현실성이 부족하죠. 그러나 꾸준히 써보지 않았다면 부족한 점을 알 수 없었을 겁니다. 하나씩 고쳐나가면 언젠가 좋은 작품이 나오겠죠. 두 번째는 점점 범위를 넓혀 갔다는 겁니다. 시를 쓰다가 소설도 쓰고 지금은 이 책도 쓰게 되었어요.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순간이 옵니다. 그럴 때마다 다른 글을 써보면서 계속 글 쓰는 습관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생각이 한 군데에 멈추지 않게 자극해 주는 효과도 있고요.
객관적으로 제가 쓴 시와 소설들은 문학성이 굉장히 부족한 글들입니다. 제법 긴 기간 동안 꾸준히 썼는데도 말이죠.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한 겁니다. 나 아닌 누군가가 공감하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글을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장점이 많고 재미있는 취미이니까요. 마음껏 쓰다가 누군가 공감해 준다면 그건 또 다른 축복이 되겠지요. 그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쓰고 싶습니다. 틈틈이, 꾸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