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6 : 발정
전지적 반려견의 시점
내가 입고 있는 털 기죽이 무겁다. 내 코와 털 끝의 신호가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린다. 그동안 수컷을 만나며, 아낌없는 사랑에 매일이 행복했다. 주인은 오늘도 여전히 밖으로 나간다. 내 허전한 마음의 빈자리를 수컷이 대신해 메운다. 이제는 더이상 불안하지 않다.
털이 자란건지 살이 찐건지 움직임이 느려졌다. 산책을 하다보면 허락없이 접근하는 남자들이 늘었다. 매너 없음에 짜증이 났다. 소리를 내고 경고를 줘도 이 놈들은 포기를 모른다. 최근에 더욱 냄새에 예민해졌다. 주변 공기와 동족들의 흔적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상하게 싸움이 잦아졌다. 들이대는 남자들의 위협에 수컷이 나를 보호한다. 하지만 남자들의 계속되는 대시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기분이 수시로 변한다. 즐겁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이유를 모르겠다.
요즘 들어 꿈을 자주 꾼다. 주인과 즐겁게 뛰어 놀고 수컷의 배에서 뒹굴뒹굴, 행복한 꿈이다. 그리고 가끔 이상형의 남자가 나타나 설렌다. 눈을 떴다. 방구석 현실이다. 뭔가 몸이 무겁고 무기력하다. 오늘도 수컷이 나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왠지 오늘은 산책하기 귀찮다. 밥을 먹었다. 잠이 계속 온다. 지금은 그냥 푹 쉬고 싶다. 또 어떤 꿈을 꾸게 될까.
갈수록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산책도 귀찮고 친구와 놀기도 싫다.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 앞에 놓여진 밥을 마냥 쳐다보기만 했다. 주인과 수컷이 서로 쳐다보며 신호를 주고 받는다. 우리 주인이 나에게 짧은 신호를 보낸다. 대답하고 싶었지만 왠지 귀찮다. 자리에 누워 형식적으로 대답한다. 주인과 수컷의 표정이 좋지 않다.
생식기가 불편하다. 크기가 부풀어 올랐다. 시간이 지나 맡기 거북한 냄새와 액체가 흐른다. 느낌과 냄새가 싫어 액체를 핥았다. 주인이 이 모습을 봤다. 주인이 짧은 신호를 보낸다. 수컷이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것이 내 하반신을 감쌌다. 조이는 느낌이 싫고 불편하다. 계속 가렵다. 빨리 벗겨내고 싶다.
어느날, 맛있는 음식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한다. 평소 같으면 당장에 달려가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는데, 오늘은 냄새가 거슬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냄새가 역겨워 자리를 피했다. 우리 주인이 나를 부른다. 대답하기 귀찮다. 냄새가 약한 곳으로 이동해서 누웠다. 냄새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왼쪽 세번째 갈비뼈 사이에서 뭔가 이질감이 느껴진다. 통증은 없지만 왠지 불편하다. 이리 눕고 저리 누웠다. 뒤척이는 모습을 보고 수컷이 접근한다. 귀찮았지만 배를 보여주며 애정표현을 했다. 수컷이 부드럽게 내 배를 만져준다. 그 와중에 불편한 그 곳을 건드렸다. 수컷은 한동안 그 곳을 계속 만졌다. 수컷의 표정이 변했다.
창문 밖이 어두워지고 주인이 돌아왔다. 오자마자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 몸을 만진다. 주인과 수컷의 표정에서 불안한 감정을 인식한다. 왠지 불안해서 누운채로 코를 핥았다. 하반신을 조이고 있는 물체의 느낌이 더욱 신경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