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의 풍경 속에서 고개를 들면,
묵언으로 앉은 잡상(雜像)의 침묵이 시간을 초월한다.
덧칠된 단청과 달리 저들의 표정은 찰나를 사는 나의 시간과 대비된다.
흙으로 빚어진 파수꾼들의 조용하고 무거운 시선 속에는
이 땅을 살다 간 수많은 이들의 삶의 궤적이 겹겹이 스며있다.
저 잡상들의 눈빛이 만 년을 응시하는 지혜로운 늙은이의 것이라면,
나의 눈빛은 오늘을 살아내는 불안한 청춘의 것이다.
하지만 문득 깨닫는다.
우리의 시선은 시대가 달라도,
결국 저 높고 영원한 '푸르름'을 향해 조용히 겹쳐져 있다는 것을.
그들의 침묵 속에서 나는 위로를 얻는다.
내가 겪는 고난도, 내가 누리는 환희도
모두 저 수많은 시간의 겹 중에 작은 한 점일 뿐이라고.
잡상들의 시선에 기대어 나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덧없는 하루하루가 결국 견고한 역사를 이루어 나갈 것임을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