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가 지금 터졌더라면

<더 포스트>(2017)

by 김현욱

<레디 플레이어 원>을 만들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트럼프 정권의 폭주에 위기감을 느끼고 두 달만에 만든 영화가 <더 포스트>다. 과연 명불허전, 스필버그가 괜히 명감독이 아니구나 싶다 느끼게 한 걸작이다.


1971년,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닉슨 정권 시절, 베트남전쟁에 관한 보고서 펜타곤 페이퍼가 <뉴욕 타임스>의 특종으로 보도된다. 그 보고서는 그동안 감춰져 있던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폭로하는 내용이었다. 바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역대 정권이 무리한 전쟁을 계속해 왔다는 사실이다.


<뉴욕 타임스>가 법원 명령으로 후속 보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사이, <워싱턴 포스트>에 기회가 돌아온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분)은 회사 상장을 둘러싸고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남편의 자살로 인해 아버지의 신문사 사주를 맡게 된 캐서린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능력을 저평가당하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가 펜타곤 페이퍼 보도로 위기에 처해있는 가운데 굳이 보도를 할 것인가에 대한 전방위 압박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은 진실을 보도하기로 결심한다. 권력의 위협에 대항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언론인들. 뻔하다면 뻔한 이야기지만, 신념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개인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감동적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캐서린이 펜타곤 페이퍼 보도를 망설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베트남전쟁에 대한 진실이 민주당의 케네디와 존슨에 대한 타격이 되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자신이 케네디을 존경하고, 존슨 정부와도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밝힌다. 최근의 부시 정권이 이라크전쟁을 시작한 탓인지, 공화당을 주전파, 민주당을 주화파로 생각하기 쉽지만, 베트남전쟁을 시작한 것은 민주당의 케네디와 존슨이었다. 오히려 공화당의 닉슨은 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실제로 1973년 파리평화협정에서 베트남 개입을 중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워싱턴 포스트>가 닉슨정권과 대립하는 이 영화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워싱턴 포스트>에 대해 소심한 보복을 획책하는 닉슨이 잠깐 등장한다. 정권에 불리한 진실을 은폐하려 하고,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을 적대시하는 닉슨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트럼프를 연상시킨다. 이 영화에서는 닉슨을 통해 트럼프를 비판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트럼프 탄핵안이 얼마 전 하원을 통과함으로써 닉슨이 더더욱 연상되게 되었다. 펜타곤 페이퍼 사건이 있은 뒤, 워터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닉슨은 궁지에 몰린다. 워터게이트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권력을 행사한 혐의로 닉슨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될 것처럼 보이자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한다. 닉슨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사임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


만약 워터게이트 사건이 2020년에 터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를 가짜 뉴스로 몰아세우고 의혹을 뭉개 없애려 하지 않았을까? 우파 언론은 닉슨을 감싸고, 닉슨과 공화당 지지자들은 닉슨을 끝까지 지지하지 않았을까?


영화 속에서 캐서린은 케네디나 존슨에 대한 개인적 감정과는 별개로 민주당 정권이 저지른 잘못을 결과적으로 폭로하는 보도하기로 결정한다. 만약 진영논리에 휘말려 보도를 그만뒀다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 역시 포기하고 말아야 했을 것이다.


워터게이트와 닉슨 사임은 사회의 분단이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고, 언론이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역할을 하고 있던, 목가적인 옛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방송의 중립성을 명기한 형평 원칙(fairness doctrine)이 없어지면서 정파성을 대놓고 드러내는 방송이 가능해졌다. 보수우파의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시청률 1위를 차지하게 된 채널이 폭스 뉴스였다. 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폭스 뉴스는 1996년 개국한 이후 부시 정권을 노골적으로 추종하며 인기를 구가했다. 언론과 사회의 분열에 박차를 가한 것은 인터넷과 SNS였다. 인터넷과 SNS에서 네티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언론만을 소비하는 확증편향이 가속화된 것이다.


얼마 전 JTBC 신년토론에서 진중권이 한 말이 있다.


"결국은 사람들이 듣기 좋은 것만 듣게 되고, 대중들 전체가 확증편향에 빠지게 되는 겁니다.(중략) 그래서 사회가 어떻게 되냐 하면 완전히 둘로 나눠져 가지고, 조극기부대하고 태극기부대로 나눠지는 거예요. 대화가 안 돼요. 대화가 되려면 뭐가 있어야 하냐 하면 상식에 기반을 해야 하는데, 상식이란 게 영어로 뭡니까? common sense거든요. common이 없어져요."

(JTBC 신년대토론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 중에서)


진중권의 다른 발언은 차치하더라도 이 부분은, 적어도 현재의 미국 상황에 대해서는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 즉, 편향된 언론이 사회의 분열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은 폭스 뉴스나 인터넷의 우파 매체만을 접하고, 트럼프를 반대하는 이들은 CNN 등의 기성 언론(legacy media)이나 인터넷의 좌파 매체만을 접한다. 공통의(common) 토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언론이 정권에 대해 어떤 의혹을 제기해도 진영논리로 회수될 뿐, 이미 정파성을 가진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트럼프에 대한 탄핵안은 트럼프가 민주당 대선후보인 바이든에 대해 불리한 내용을 우크라이나에 요구한 사건 때문에 가결되었다. 상식(common sense)이 아직 살아있는 사회였다면, 트럼프가 인정한 내용만으로도 탄핵이 가결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분열될 대로 분열된 미국사회에서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물론 마음 속으로 트럼프를 탄핵해도 수백 번은 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당연히 탄핵 사유가 되었겠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가짜 뉴스'일뿐이다.


영화 속에서 성차별주의자로 그려지는 이사가 <워싱턴 포스트>의 선대 사주가 얼마 훌륭한 인물이었는지 회상하며 마찬가지로 훌륭한 사위에게 물려주었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던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 분)는 "지금이었으면 딸에게 물려줬을 것"이라고 쏘아붙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에서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아들, 딸 구별 않고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현대의 성평등주의적 관점에서는 올바른 승계지만, 아들이든 사위든 딸이든 족벌경영임은 다를 바 없다. 그 유명한 <워싱턴 포스트>도 족벌경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구나. 이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적 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현재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는 그레이엄 가문이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3년 아마존의 제프 베소스에 인수되었다. 196,70년대 저널리즘 역사에 금자탑을 세웠던 <워싱턴 포스트>가 신흥 인터넷 기반 벤처 사업가에 인수되었다는 사실이 현재 저널리즘이 놓인 위치를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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