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작가 아서 클라크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쓸 당시 2001년은 아득한 먼 미래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21세기는 아직 빛나는 미래를 상징했다. 그랬던 2001년이 어느덧 과거가 되고 이제는 역사가 되었다. 이제 곧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의 대부분은 2001년, 21세기에 태어난 이들로 채워진다. 2001년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9.11테러를 리얼타임으로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다.
그 당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대학 신입생들에게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에 대해 설명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아마도 9.11테러와 이라크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친구들이라면 로브 라이너 감독의 <충격과 공포>(2017)를 보고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다음 편에서 다루게 될 <바이스> 역시 함께 보기를 권한다.)
영화는 2001년 9.11테러와 함께 시작된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과 펜타곤이 이슬람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비행기 테러로 무너진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부시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을 넘어 이라크에서도 전쟁을 시작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는 모두가 알다시피 알 카에다와 후세인은 관계가 없었고,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UN이나 프랑스, 독일 등의 국제사회 역시 대량살상무기 유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전쟁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쟁을 시작했다. 물론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라크에 안정된 민주주의는 정착되지 않았고, 혼란의 틈바구니에서 IS라는 최악의 이슬람 테러조직이 등장해 전 세계를 공포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다. 결국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미국의 명분 역시 땅에 떨어졌다. 대의 없는 전쟁을 위해 죽거나 부상을 당한 미군 역시 많았고, 전쟁에 필요한 비용 역시 미국의 패권에 큰 타격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라크전쟁이 실패였음은 틀림없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라크전쟁이라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것일까? <충격과 공포>는 9.11에서 이라크전쟁에 이르는 과정을 진실을 위해 싸운 기자들을 통해 보여준다. 9.11테러로 인해 고조된 미국인들의 공포와 애국심은 부시 정권에 의해 쉽사리 이용되었고, 무엇보다 그러한 여론 형성에 언론의 역할이 컸다. 한국에서는 퀄리티 페이퍼로 알려진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주류 언론들은 정부의 발표를 받아쓰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영화의 주인공들이 소속된 작은 통신사 <나이트 리더>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진실을 찾아 보도하지만, 그 영향력은 <뉴욕타임즈> 등의 주류 언론에 비하면 미약하기만 하고, 대다수 언론들은 <나이트리더>의 보도를 무시하기만 한다. 결국 <나이트 리더>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전쟁 개전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라크전쟁과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정부와 언론의 문제에 관해선 <그린 존>(2010)이나 <페어 게임>(2010) 등의 영화가 있었다. 하지만 <그린 존>이나 <페어 게임>이 동시대인의 체험으로 회고된다면, <충격과 공포>는 역사로서의 이라크전쟁을 되돌아보고 있다. 정보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훌륭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라크전쟁에 대해 잘 모르는 세대에겐 훌륭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반면에 영화로서 보자면 아쉬운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자체의 서사보다도 정보 전달에 치중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이 설명충이 된다. 등장인물들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대사를 말하는 기계적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영화 속 캐릭터로서의 인간적 매력은 찾아볼 수 없으며 감정이입을 할 수도 없다. 심지어 실존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주인공들의 이름조차 기억에 남지 않는다.
설명충이 된 영화 캐릭터들을 상징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이라크전쟁을 둘러싸고 급변하는 상황들만 보여주던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등장인물의 개인사로 기자인 워렌(제임스 마스던 분)이 리사(제시카 비엘 분)라는 여성과 만나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놀랍게도 영화 속에서 리사가 뭐하는 인물인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무언가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암시는 나오는데 무슨 직업에 종사하는지는 알 수 없다. 남자의 직업인 기자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상세하게 나옴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직업은 와이프로서만 그려진다).
첫 데이트 자리에서 리사는 워렌이 쓴 기사를 읽었다면서 이라크에서 천여 년 이상 계속되어온 순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다툼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한다. 그러면서 만약 사담 후세인이 제거된다면 이라크에서 순니파와 시아파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과연 첫 데이트에서 남녀가 나눌 만한 대화 내용인가? 여기서 리사가 하는 말은 그 자리에 있는 워렌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하는 말이다. 1분 정도 되는 이 설명충 장면은 최근 본 가운데 가장 민망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충분히 좋은 교재가 되겠지만, 정보전달과 메시지에만 치중한 나머지 영화로서 희생한 부분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