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층에 대한 온정주의적 접근의 위험성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

by 김현욱

작년 연말에 한국에서는 이른바 장발장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논란이 되었다. 어린 아들과 함께 슈퍼에 들어가 몰래 절도 행각을 벌이다 잡힌 아버지가 슈퍼 주인과 경찰의 호의로 풀려났다는 것이다. 이 사연이 TV에서 '미담'으로 보도되면서 온정의 손길이 답지했다. 그런데 나중에 다른 TV 방송에서 아버지가 평소에 성실하지 못 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의 동정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이 사건 자체가 한국사회의 현상을 담은 하나의 촌극으로 느껴진다. 애초에 미담으로 포장해서 보도한 언론도 문제지만, 장발장 부자라는 환상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대중 역시 문제다. 어느 나라에나 직업도 없고 변변한 거처도 없고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빈곤층이 있다.


빈곤층에 대해 우파는 그들이 게으르거나 부도덕한 탓이라며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한다. 반면에 좌파는 빈곤층이 사회구조에 의해 본의 아니게 희생된 선량한 사람들로 묘사한다. 두 가지 관점은 정반대로 보이지만,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빈곤층에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빈곤층이 선량하고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구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좌파적 관점과 불성실하고 불량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우파적 관점은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빈곤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은 개인적 요인과 사회구조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결과이며, 불성실하다거나 선량하다고 선입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문제다.


영국의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좌파적 관점에서 본 빈곤층에 대한 하나의 전형적 사례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평생 근면 성실하게 일해 왔고, 여전히 일하고 싶어 하지만 지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을 못 하게 된 인물이었다. 이런 캐릭터에게 공감하는 건 어렵지 않다. 마가렛 대처가 살아 돌아와도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응분의 몫이 돌아가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말에 원칙적으로는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빈곤층이 모두 다니엘 블레이크처럼 근면 성실하고 선량한 사람들이기만 할까?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노력이나 의지를 가지지 않은, 작년 연말의 '장발장 아버지' 같은 사람들은?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어느 가족>이나 미국의 션 베이커 감독이 만든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이상화된 다니엘 블레이크와는 다른 빈곤층의 현실을 묘사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싱글맘 핼리는 술이나 담배, 마리화나, 욕설이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이 드물다. 짝퉁 물건들을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 외에 뚜렷한 수입도 없고 그나마도 목돈이 생길라 치면 탕진해 버린다. 모텔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딸 무니와 함께라면 행복하다. 시스템 밖으로 밀려났지만 가족끼리 낙천적으로 대안적 삶을 살아가려 한다는 점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과 비슷하다(여기선 마리화나 대신 빠칭코가 나온다). 아마도 한국의 언론에 소개된다면 동정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부도덕한 어머니로 지탄의 대상이 될 것이다.


빈곤층의 이미지를 다니엘 블레이크와 같은 이상적 약자로 묘사하는 것은 앞서 말한 이분법을 강화할 뿐이다. 현실의 빈곤층은 장발장 아버지처럼 도덕적으로 이상적인 인물이 아닐 수는 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올바른 인물인가 아닌가는 사회보장 문제에서는 부차적 문제다. 도덕적 이분법과 그에 따른 온정주의적 접근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니엘 블레이크>, <좀도둑 가족>,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공적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된 빈곤층이 결과적으로 시스템에 의해 파국을 맞이하는 플롯이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하지만 영국(유럽), 일본, 미국에서 그 양상은 각각 다른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세 작품 중 가장 심각하고 무겁지만 역설적으로 희망적이다. 지역 공동체 내에서 이웃사촌과의 연대가 영화의 해답이다. <어느 가족>에서는 아버지의 산재나 어머니의 정리해고 같은 사회적 요인이 언급될 뿐, 공적 제도 그 자체가 부재한다. 이웃사촌, 지역 공동체의 연대 대신 해답으로 제시되는 건 (유사)가족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두 작품의 사이에 있다. 다니엘 블레이크가 영화 내내 싸웠던 사회보장 시스템은 딱 한 장면으로 끝난다. 소셜 워커는 핼리에게 일하라고 촉구하지만 핼리는 자신에게 맞는 직업이 없다며 욕설을 퍼붓는 것으로 끝난다. 이후 등장하는 공적 제도는 결말에서 오히려 핼리 모녀의 가족을 해체시키는 폭력적 존재로 등장할 뿐이다. 딸 무니와의 가족애는 <어느 가족>을 연상시키지만, 삼 세대에 걸친 좀도둑 가족의 연대에 비해 핼리-무니 모녀의 가족은 보루가 되기엔 무력하다. 모텔 매니저나 이웃과의 유대는 <다니엘 블레이크>를 연상시키지만 모텔 투숙객들은 이곳을 임시거처로 삼을 뿐 언제든 차 타고 떠나버리면 그만, 지역 공동체가 뿌리내리기 어렵다. 게다가 가장 절친이었던 애슐리와는 파국으로 끝나고 만다. 핼리 모녀는 공동체의 와해, 사회의 와해 끝에 파편화되어가는 개인들로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화려한 색감, 사고뭉치 아이들의 쾌활한 난동과는 반대로 가장 답이 보이지 않는다. 공적 제도에 의한 복지가 붕괴한 미국 사회의 빈곤문제의 심각성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keyword
이전 14화음모론자를 이길 수 없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