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자를 이길 수 없는 이유

<나는 부정한다>(2016)

by 김현욱

트럼프 시대에 들어 위험시되고 있는 현상들이 있다. 아마 가짜뉴스, 인종차별, 음모론은 그 대표적 문제들일 것이다. 이 세 가지가 결합된 것이 제2차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이 아닐까? 마이크 잭슨 감독의 <나는 부정한다>는 실제로 있었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와 유대인 역사학자의 재판을 다룬다.


1996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데이비드 어빙(티모시 스폴 분)은 자신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학자 데버라 립스탯(레이첼 바이스 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다. 이 시놉시스를 보고 상상한 내용은 아마 이런 것이다. 원고 측과 피고 측의 팽팽한 논리 대결, 마지막에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증언대에 서고, 거기에 설득된 배심원들은 무죄 판결을 내리고 정의가 승리한다.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나 <당신이 잠든 사이에>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예상을 빗나간다.


티모시 스폴은 맡은 역할을 잘 해냈다. 재판이 시작되는 영화 중반까지 데이비드 어빙은 용의주도한 악당, 상대할 만한 강적으로 보였다. 어빙이 변호사 없이 스스로 재판에 임하겠다고 했을 때도, 배심원 재판을 신청하지 않았을 때도, 나름대로 심모원려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데버라의 변호사 리처드(톰 윌킨슨 분)와 어빙의 대결은 싱겁게 끝난다. 무게감 있는 강적으로 보였던 어빙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논리 없이 떼만 쓰는 삼류 악플러와 다를 바 없다. 승부가 너무나 명확히 보이는 이런 재판이 영화로서 재미가 있을 수가 있는가?


물론 노련한 변호사 리처드가 팩트와 논리로 어빙을 논파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관객이 법정물에 기대하는 수준에는 못 미친다. 악역이 '우리 편'을 위기로 몰고 갈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최후의 승리가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끌어낼 수 있는데, <나는 부정한다>는 그렇지 못했다. 삼류 악플러에게 노련한 변호사가 인생이 실전이라고 가르침을 주는 내용을 영화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재판 과정에서 피고 데버라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증인으로 신청하려 하지만 리처드를 비롯한 변호인단은 여기에 반대한다. 사실 실제 재판이었다면 변호사로서 그러한 판단은 당연할 것이다. 괜히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 증언을 하도록 해도 재판에서 승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증언에 대한 공격의 빌미만 제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적으로 보자면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증언이 없어짐으로써 관객의 감동을 끌어내는 감정의 카타르시스 역시 허무하게 사라진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뿐 아니라, 피고 데버라조차도 영화 속 재판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변호사 리처드가 언변과 논리로 승리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관객으로서는 이 인물에게 감정 이입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당연하게도 재판은 어빙의 패소, 데버라의 승리로 끝난다. 하지만 이 역시도 불완전연소로 끝난다. 일단 데이비드 어빙이 데버라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재판인 만큼, 재판에 졌다고 어빙이 감옥에 가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재판을 통해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어빙은 재판에 지고도 방송에 나가서 법적으로야 어쨌든 역사학적으로는 자신이 옳다며 정신승리를 한다. 재판을 통해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위키백과를 보면 재판에 진 어빙은 결국 파산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부각되지 않았다.


현실이 그렇다. 한국에도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이 있다. 재판을 통해서 법적 책임을 묻고, 승소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진정 '승리'일까? 결국 음모론자들은 재판에 져도 털끝만큼도 반성하지 않고 음모론을 멈추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재판의 승패에 따라 줄어들 지도 않을 것인데 말이다. 결국 음모론과의 싸움은 아무리 법적으로, 논리적으로, 학술적으로 이긴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승리할 수가 없는 싸움이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서 오히려 그러한 피로감을 느꼈다.


이 재판이 과연 극영화로 만들 만한 사건이었는가 이해할 수 없었다. 법정물로서의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해 각색을 하긴 했겠지만, 재판을 비교적 충실히 재현한 영화에는 스릴이나 카타르시스가 부족했다.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극우파를 다룬 <주전장>처럼 차라리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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