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분법과 소수자성

<셰이프 오브 워터>

by 김현욱

트럼프 시대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제90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제74회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으로 작품성에 높은 평가가 내려졌다고 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불만스러웠던 영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말을 못 하는 언어장애인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가 주인공이다. 그녀가 청소부 일을 하던 NASA에 어느 날 인간과 물고기를 섞은 괴생명체가 잡혀 온다. 남몰래 괴생명체와 교감을 가지게 된 그녀는 청소부 동료인 흑인 여성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분)와 이웃사촌 동성애자 자일스(리처드 젠킨스 분)의 도움을 얻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괴생명체를 구해내게 된다. 하지만 괴생명체에 대한 격렬한 증오를 가진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분)는 연구소를 탈출한 괴생명체를 추적하고, 괴생명체를 방생하려는 엘라이자를 추적한다.


동화 같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동화 같은 영화다. 단순히 양서류 인간이라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등장하기 때문에 동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동화의 특징은 착해야 할 사람은 착하고 나빠야 할 사람은 나쁘다는 점일 것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선과 악의 대비 구도가 명확하다. 언어장애인 여성인 엘라이자, 흑인 여성인 젤다, 게이인 자일스는 착하고, 백인 남성인 스트릭랜드는 나쁘다. 등장인물들의 선악은 영화 내내 별다른 변화가 없으며, 착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착하고 나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쁘다. 관객들은 당연히 괴생명체를 자신의 출세를 위해 잡아와서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괴롭히는 스트릭랜드를 악역으로 생각하고, 괴생명체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 엘라이자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선악이분법 구도가 너무나 명확하다는 점이다. 인간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괴생명체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과 괴생명체를 괴롭히는 악당을 상대로 싸워서 소수자들이 결국 이겨낸다는 스토리는 트럼프 정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될 수도 있다. 괴생명체를 괴롭히는 악당vs.괴생명체를 구해내려는 주인공 일행의 갈등 구도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다.


단순하지만 명쾌한 선악이분법. 이러한 선악이분법을 통해 미국을 분열시킨 끝에 대통령이 된 인물이야말로 트럼프가 아니었던가.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과 해방이라는 <셰이프 오브 워터>의 메시지는 얼핏 보기에는 트럼프의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선악이분법이라는 서사 구조를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트럼프와 판박이다. 내가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에 대해 느끼는 불만은 트럼프를 극복하려는 의도가 지나치게 전면에 드러난 나머지 오히려 트럼프식의 사고방식과 이분법을 반복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내가 <셰이프 오브 워터>를 트럼프 시대의 할리우드 영화의 대표적 사례로 본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


소수자들의 연대는 가능할까


괴생명체를 구하고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장애인 여성, 흑인 여성, 게이 남성인 반면, 악역으로 나오는 스트렌드는 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남성으로 그려진다. 힘 없이 차별당하던 소수자들이 차별과 억압의 대상인 백인 남성을 상대로 저항에 나서서 이기는 이야기는 분명 관객의 쾌감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장애인, 흑인, 게이, 여성이라는 소수자들이 주류에 맞서 하나로 힘을 합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세상에는 '소수자(the Minority)'라는 단일한 속성이 있는 게 아니라 '소수자들(minorities)'이라는 여러 개의 속성이 존재한다. 현실에서는 <셰이프 오브 워터>처럼 소수자들이 서로 힘을 합쳐 싸우기보다는 소수자들이 서로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장면을 더 많이 목격하게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워마드다. 인터넷 페미니즘 사이트로 주목받던 메갈리아는 게이에 대한 태도를 두고 분열했고, 게이 혐오에 찬성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 사이트가 워마드다. 물론 워마드 등에서 주장하듯이 게이의 여성 혐오 또한 문제인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게이의 여성 혐오도, 여성의 게이 혐오도 문제다. 안타깝게도 현실의 소수자들은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처럼 연대하기보다는 여성과 게이라는 소수자들이 서로를 혐오하고 차별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셰이프 오브 워터>가 주장하는 것처럼 소수자들의 연대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 흑인, 게이, 여성 등등의 속성은 각각 개별성을 가진다. '소수자'라는 하나의 개성으로 연대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영화에서 미국 사회의 주류를 상징하는 악당에 맞서 소수자들이 연대하고 이겨내는 이야기는 감동적이긴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동화 속 이야기로 느껴진다.


아카데미와 베니스는 <셰이프 오브 워터>를 트럼프 시대를 극복할 하나의 해답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이분법적 세계관이 해답이 아닌, 극복하고 지나가야 할 지점이라 생각한다.

keyword
이전 01화트럼프 시대의 할리우드 영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