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로 향하기 전의 느린 하루
2017/08/25 금요일 | 로테르담 2일 차
밍기적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은 아직 어둑한 꿈의 뒤안길을 붙잡고 있었다.
이불 속에서 한참을 뒹굴며 시간을 질질 끌다가 마침내 정오가 가까워져서야 침대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대충 눈꼽을 떼는 시늉만으로도 나갈 채비는 마쳤다.
숙소에서 천천히 발을 옮겨 블라크 역 쪽으로 걸어 내려가니 도시의 리듬이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렸다.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노랗게 기울어진 큐브하우스가 시야를 톡 하고 채우고, 그 옆으로 키프호프의 육면체들이 비스듬히 서로를 기대며 서 있었다.
그 기묘한 풍경 앞에서 몇 장 셔터를 누르고 조금 더 걸어 마르크탈 아치 아래의 그림자를 지나니 비로소 내가 이 도시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30분남짓의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나른함
2시쯤 되자 허기가 나를 깨웠다.
짜장라면 두 봉지를 끓여 흡입하고 맥주 한캔을 열어서 목 구멍으로 꿀꺽 넘기니 오후가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침대에 몸을 반쯤 파묻은 채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포근한 햇살과 자전거 바퀴 소리가 하루의 속도를 적당히 늦춰주는 기분이 들었다.
내일 브뤼셀로 가야 한다는 사실조차 오늘의 게으른 공기 속에서는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배터리들도 모두 충전해두었고 해야 할 일도 없었기에 그저 흐르는 시간에 나를 맡겼다.
산책과 작은 우연
해가 부드럽게 기울기 시작한 7시.
다시 블라크 역 쪽으로 산책을 나서는데 어제 봤던 한국인 여행객과 또 마주쳤다.
여행지의 우연은 언제나 작은 파동처럼 마음을 간지럽힌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거리를 사고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며 길을 천천히 되짚어 걸었다.
마르크탈이 저녁빛에 물들어 둥근 배경을 만들고 큐브하우스의 노란 면들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사이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샤워를 마쳤다.
하루가 고요히 축음기처럼 돌아가다 멈추는 순간
침대가 부드럽게 나를 끌어당기며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떠오른 질문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날의 빈틈 속에서
나는 대체 무엇을 기대하며 다음 날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
오늘의 경비
짜장라면 4봉 5.65유로
저녁 6.35유로
숙소 54000원 시티은행 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