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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Apr 05. 2016

꽃집 아저씨

꽃을 파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2월이 끝나갈 즈음에..


오랜만에 청량리 매운 할매 냉면 집에 갔었다. 디저트로 메밀 호떡까지 챙겨 먹고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는데 꽃집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마치 죄인처럼 서있는 학생 한 명과 그 옆에 세워진 자전거, 그리고 말없이 박살이 난 화분들을 치우고 계신 꽃집 아저씨를 만났다.


학생이 복잡하고 비좁은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행인을 피하려고 했었던지 그만 화분들이 놓여진 선반으로 기우뚱 하다가 와장창 했던 모양이다.


어린 학생이 난처하게 됐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주인아저씨가 너무 화를 내면 어쩌나 싶어서 일단은 어찌하시나 지켜보고 화분값을 대신 물어드리려고 기다렸다.


아저씨는 한동안 말씀 없이 여섯, 일곱 개쯤 깨어진 화분과 바닥에서 흙과 뒤섞여 범벅이 된 꽃, 나무들을 치우고 계셨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는 당장 학생 부모한테 전화해서 꽃값을 물어내게 하라고 계속 다그치셨다.


 "엄니, 학생한테 어떻게 꽃값을 물어내라고 해요.."


그리고 "이렇게 좁은 길에서 자전거를 타면 어쩌니?" 하고 딱 한마디만 학생에게 하신다.


됐으니 그만 가보라고 해도 아이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쭈삣거리고만 서 있었다.

학생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래, 그만 가봐, 많이 놀랐지? 당황하고 겁났겠다. 그런데 이제 괜찮아 걱정하지 마. 다행히 용서해 주시니까 정말 감사한 분이네. 대신 아줌마가 아저씨꽃을 팔아드릴게. 너도 나중에 혹시 곤란한 친구를 만나게 되거든 그냥 지나치지 말고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힘들었겠다. 얼른 조심해서 가...


너무나 착한 아이였다. 감사하다고 공손히 인사를 하더니 그냥 자리를 뜨지 않고 바닥에 앉아 깨진 화분 조각들을 마저 다 치우고 간다.


이쁘고 귀한 녀석..


아이가 가고 나서 화원으로 들어갔다.

아직 날이 추워서 지금 화분갈이를 하면 몸살이 나서 꽃도 나무도 살지 못한다고.. 아까운 애들을 다 버려야 한다고, 장사도 안 되는데.. 어른만 같았으면 당장 물어내라 했을 거라고..


아저씨는 약간의 언어장애가 있는 분이셨다.

하지만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나를 감동시켰다. 따뜻하고 감사했다. 너무 멋지신 분이라고, 감사해서 저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고..


나는 예쁜 꽃과 꽃 화분 몇 개를 샀다. 건강하게 잘 키우는 방법까지 자상하게 덤으로 얻어듣고 꽃집을 나왔다.


목까지 움츠러드는 추운 겨울 거리에서 꽃보다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집 아저씨를 만났다.


기쁘고 감사한 날이었다.

혹시 예쁜 꽃 화분이나 소중한 분에게 꽃다발을 선물하실 일이 있으신가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시다면 꽃도 사고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도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려보세요.


청량리역 건너편 냉면집 골목 들어가는 행길가에 포장마차와 과일 행상들이 즐비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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