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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Mar 31. 2016

오후 2시 햇빛 잘 드는 자리..

잠시 멈춤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던 길.

밥값보다 비싼 커피 한잔을 들고 일부러 천천히 가고 싶어서 소화도 시킬겸 공원쪽 길을 택해 걸었다.


오후의 햇살이 따뜻하게 등을 감싸며 아무런 무게도 싣지 않고 업혀왔다.

그 따뜻함이 등에서부터 몸으로 스며 들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소곳하지 못한 걸음탓에 넘치도록 가득 담아준 커피는 자꾸만 넘쳐흘러서 미리 얻어온 냅킨 뭉치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어릴적 외할아버지가 양은으로 된 조그만 주전자를 손목에 걸어주시며 막걸리를 받아오라고 심부름을 시키시면 어찌나 퐁당대고 걸었던지 할아버지 앞에 내민 막걸리 주전자는 언제나 반쯤은 비어 있었고 나머지 반은 발자국이랑 나란히 뒤에 서서 긴 줄을 그으며 문앞까지 바짝 따라왔었다.  


손에, 옷에 흘린 커피를 제대로 닦으려고 마침 앞에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잠시 멈추었다.


더이상 커피는 흘러치지 않았다..


어쩌면...우선 멈추었어야 했나?


지난 주말이 내내 그랬었다.

고민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데 속을 지글지글 끓인 탓에 밥도 못 먹고 잠을 설치며 몸까지 고달프게 했었다.


결국 지나고 보니 별일도 아니었던걸..

그만한 일도 아니었던걸.


잠시 멈춰서 커피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마시고 걸을걸..


누군가 이 벤치에 앉아 있을때 그날도 오늘처럼 볕이 너무 따뜻하고 좋았었구나..


그날, 오후 두시에.


잠시 햇살이 쏟아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고 눈을 감는다.

더 이상 담을 수 없어 흘러넘치던 생각들이 조용히 아래로 가라앉는다.

햇살을 받아 가볍게 증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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